362~363.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그것에 앞서는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 현존하는 기념비들은 그들 사이에 어떤 이상적인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질서는, 어떤 새로운 (진정으로 새로운) 예술작품이 그것들 사이에 도입되면서 수정된다.”(<전통과 개인의 재능>, 1919) 인용하기도 새삼스러운 엘리엇(T. S. Eliot)의 이 말은 백년 전에 옳았듯이 지금도 옳다.

365~366. 김행숙이 아니었다면, 방금 자살을 기도해서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한 소녀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는 말을, 살아 있는 인간들의 몸을 통과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이승에 남기를 선택한 어느 귀신의 말을 우리가 들을 수 있었을까. 또 황병승이 아니었다면, 남자로 살아가기보다는 학대를 받더라도 여자로 살기를 택한 어느 상처투성이 트랜스젠더의 고통스러운 반어의 말을, 조금 전에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토한 어느 지친 웨이트리스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이런 시들이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김행숙과 황병승이 결국 승리했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시를 읽기 시작한 독자는 이 시인들이 한국시의 영토를 어떻게 얼마나 넓혔는지 가늠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다시 보아도 결정적인 것은 역시 이것이다. 2000년대의 어떤 시인들 덕분에 한국시는 ‘시인(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서의 시’라는 일면적이면서도 지배적인 통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이제 시는 누구도 될 수 있고 무엇이건 말할 수 있다. 이런 시들로는 시인의 퍼스낼리티를 짐작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종의 위조 신분증이다 위조 신분증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혼란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축제였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무에서 창조된 유’였던 것은 아니다. 당장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이라 불리는 저 오래된 기법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시인 자신과는 명백히 다른 어떤 화자가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순전한 혼잣말이 아니라 어떤 청자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발화인데, 청자가 직접 시 속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화자의 말을 통해 청자의 반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자는 한명인데도 연극적인 대화의 공간이 생겨난다는 점이 이 기법의 묘미이다. 그래서 독백이되 극적인 독백이다. 낭만주의 시기에 이미 이 기법의 맹아가 나타났다는 견해도 있지만, 대체로 빅토리아 시대(1837~1901)를 대표하는 두 시인인 테니슨(A. Tennyson)과 브라우닝(R. Browning)에 의해 (특히 후자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보는 것이 영문학계의 정설이다. 앞 세대인 낭만주의 시인들의 내면 고백에 싫증이 났다는 듯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들이 가공의 화자 뒤로 숨어버리자 시에서 아주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다.

368~369. 이런 시들이 나오고 나서야 우리는 이전 시기의 시들이 재현했던 인식과 정서가 협소한 범위 안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로 많은 시인들이 그 인식과 정서의 대륙에 잇달아 상륙했다. 그러니 이 새로운 화자들을 그저 화자라고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들뢰즈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책에서 ‘개념적 인물’을 창조하고 그를 통해 사유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김행숙과 황병승의 (혹은 2000년대의 몇몇 시인들의) 시에는,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어떤 ‘감응적 인물’이 존재한다. 발화의 주체라는 점에서는 일단은 화자지만, 시를 지배하고 있는 인식과 정서의 주체이기 때문에 단순한 화자 이상이다. 그들은 (스스로) 감응하면서 (독자를) 감응시킨다. 어쩌면 김행숙과 황병승이라는 이름은 그들이 창조한 감응적 인물들의 필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황현산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이 시인들의 시쓰기는 본질적으로 번역의 과정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이후로, 그리고 그들의 동료와 후배들 덕분에, 한국시에서 이른바 ‘시적인 ‘ 문장에 대한 통념적인 합의는 거의 무의미해졌다. 2000년대 시는 감응적 인물만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딕션(diction)도 함께 발명해야 했다.

370. 왜 하필 2000년대 중반에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따져본 작업은 드물다. 혹시 예술체제에서의 이같은 변화는 정치체제에서의 어떤 변화와 연동돼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단서로 삼아봄직한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어쩔 수 없는 근간이 되고 있는 ‘대의’와 문학의 주도적 방법론 중 하나인 ‘재현’이 ‘리프리젠테이션’(representation)의 서로 다른 번역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371. 먼저 빅토리아 시대를 행해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조언을 구해보면 어떻까. 극적 독백은 왜 하필 빅토리아 시대에 성행했는가. 여러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마침 우리가 앞에서 예고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한 사례가 있다. “극적 독백은 [낭만주의 시기의] 자기힘몰적 내면화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고 해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19세기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재현ㆍ대의(representation) 문제와 불가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373~374. 지금은 대의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단지 대표가 자기 성원을 얼마나 충분히 대표하는가(대의불충분성의 문제) 이전에, 대표체제 바깥에 있는 자들을 대표들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대의불가능성의 문제)”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낭만주의의 내면 지향에 대한 반발로 빅토리아 시대의 극적 독백이 등장했다는 관행적인 논리와 유사하게, 1990년대 시의 내면 지향에 대한 미학적 피로감 때문에 이제는 다른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왜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1인칭 내면 고백의 시들이 갑자기 지겨워졌던 것일까. 어느 시기에 개개인의 취향이 집합적으로 변했다면 거기에는 정치적 조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정치적 조건이 어떤 (무)의식적인 매개를 거쳐 미학적 혁신을 낳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문학사의 시각일 것이다. 이를테면 ‘나’라는 존재가 단지 1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라는 환멸과 권태가 시에서 1인칭 ‘나’에 대한 탐구를 진부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또 그 1인칭의 빈자리에, 1표만큼의 권리조차도 행사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좌절과 분노가 다양한 3인칭들의 형상으로 밀고 들어온 것은 아닌가.

382~383. 2010년대의 한국시는 이 사회에서 충분히 대의되지 못하고 있거나 아예 대의구조 바깥에 버려져 있는 감응의 구조들을 재현할 수 있는 문을 하나씩 열어나가게 될 것이다. 다음 문장도 근본적으로는 이와 다르지 않은 요청으로 읽힌다. “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 속에 개입하는 어떤 방식, 세계가 우리에게 가시적인 것으로 되는 방식, 이 가시적인 것이 말해지는 방식, 이를 통해 표명되는 역량들과 무능들이다. 근래 자주 인용된 랑씨에르(Jacques Rancière)의 문장이다.

_ 신형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 2010년대의 시를 읽는 하나의 시각”, <창작과비평> 2013년 봄호 제41권 제1호 통권 159호, 2013.3, 362-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