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뢰한과 천박한 여인들로 들끓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완전하지 않아 이 땅에 올바른 사람들만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무뢰한들로 가득한 거름더미에서 진주를 캐내는 것이 문학의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문학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 화학자들에게는 이 땅에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작가들도 화학자들만큼이나 객관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는 일상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버리고, 풍경화에서는 거름더미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세상에서는 선한 열정뿐 아니라 악한 열정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희곡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밥먹고 날씨 얘기를 하고 카드놀히 하는 모습을 담아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작가가 그러한 내용을 원해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의 삶은 정말로 있는 그대로여야 합니다. 절대로 과장되어서는 안 됩니다.”(Letters of Anton Chekhov, 1887. 1. 14.)

“리얼리즘이라는 무대 양식은 단순히 희곡을 재현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요구한다. 즉, 새롭게 발견한 무언가를 또 다른 디테일로 내놓지 않으면 별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고, 그저 진부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끝맺기 쉽다. 이것이 바로 리얼리즘 연극의 어려움이다.

“체호프는 입센이나 고리키, 하우프트만, 스트린드베리와 다르다. 이들의 작품에는 작가들이 끈질기게 팀구하여 희곡 안에 심어놓은 명확한 주제라는 것이 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그 주제만 놓치지 않는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들을 무대 위에 풀어놓을 수 있다. 각색을 하거나 설정을 달리하여 공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체호프의 희곡은 그렇게 접근할 수 없다. 주제는 숨겨져 있고, 결론은 없다. 오직 디테일과 정서만이 호흡을 바꾸어가며 희곡의 행간에서 숨쉬고 있을 뿐이다. 이것들을 ‘보이고 들리게’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 한국형 리얼리즘 연극, <어떤 동산> _ “이바노프”, “갈매기”, “바냐아저씨”, “세자매”, “벚꽃동산”을 인용한 안톤 체호프 해석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