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7, 2020: 4:25 pm: bluemosesErudition

“현대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효용과 가격만으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토리와 이념을 구매한다.” “지난 2월2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가든스에서 열린 슈퍼볼에선 제목이 ‘넥스트 어웨이츠’(Next Awaits)라는 현대차의 색다른 광고가 선보였다. 약 2분 길이인 이 브랜드 광고는 뒤로 가기 기법을 사용해 현대차와 현대,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 11:59 am: bluemosesErudition

민주당만 빼고를 386만 빼고, 로 바꾸고 싶다.

: 11:58 am: bluemosesErudition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고 공복이어야 할 국회의원이 상전 노릇한 지 오래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도 행정부가 균열을 보이고 국회가 운영 중인데도 여야를 대신한 군중이 거리에서 맞붙고 있다. 이쯤 되면 선거는 무용하고 정치는 해악이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로 집권했으면서도 대통령이 진 ‘마음의 빚’은 국민보다 퇴임한 장관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은 4·15 총선 승리가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 외치지만 민주당은 촛불의 주역이 아니었다. 1987년 6월항쟁에서 야당인 통일민주당은 항쟁지도부인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해 대정부협상을 주도했다. 그러나 2016년 말 민주당의 역할은 다른 야당들과 함께 촛불시민들의 요구를 사후적으로 수용해 탄핵안을 가결시키는 데 그쳤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청와대에 단독 영수회담을 제의해 논란이 됐고, 우상호 원내대표는 탄핵 사유에서 ‘세월호 7시간’을 빼야 탄핵 가결표를 던지겠다는 당시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과 협상에 나섰다.” “이제는 선거에만 매달리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 과정의 달콤한 공약이 선거 뒤에 배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막아야 한다.” “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알려주자. 국민이 볼모가 아니라는 것을, 유권자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임미리ㆍ고려대 연구교수)

* 위 칼럼에 민주당은 검찰 고소를 하였고, 반대 여론에 밀려 취하하였다. 선거 승리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 남용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민주적 전제주의랄까. 이것은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붕괴와 나치 체제의 등장을 경험한 독일 현대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

February 16, 2020: 11:33 pm: bluemosesErudition

17. 결국 기독교의 발흥에 관한 모든 물음은 하나로 수렴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로마 제국 변방에서 시작된 미약하고 이름 없는 메시아 운동이 고전시대의 이방 종교를 밀어내고 서구 문명의 지배적 신앙으로 자리매김했을까? 하나의 물음이지만 답은 여러 갈래로 도출되어야 한다. 단 하나의 요소가 기독교의 승리를 이끌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4. 현대 사회과학은 교리의 흡인력은 매우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이 새로운 신앙이 전하는 교리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개종한 이후라는 것이다.

37. 개종의 본질은 한 사람의 종교적 행동을 친구나 가족 구성원의 종교적 행동과 일치하도록 조정하려는 것이었다.

38. 어떤 이는 일탈하는 한편 어떤 이는 순응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순응 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38. 오늘날 문선명 교인이 되는 것은 일탈 행위이다. 1세기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그랬다.

39. 일탈적인 신흥종교 집단으로의 개종은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사람들이 비구성원보다는 해당 집단의 구성원과 더 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했을 때 일어난다.

43. 성공적인 운동은 개방적인 네트워크로 남아 있는 기법을 발견함으로써 바깥으로, 주변의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 속으로 뻗어나간다.

43. 폭발적인 성장의 이유는 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비례적으로 그 운동의 사회적 표면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새로운 신자가 해당 종교 집단과 잠재적 개종자 사이에 형성하는 애착관계 네트워크의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다.

60. 만일 초기 교회가 훌륭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다른 모든 신종교 운동과 같았다면, 초기 교회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니라 좀 더 기득권층에 기반을 둔 운동이었다.

61. 종파(sect) 운동은 기성 종교 내에서 신앙의 세속화 대신 내세를 더욱 지향하고자 갈망하는 이들이 그 종교와 주변환경 간에 좀 더 높은 수위의 긴장 수순을 “회복”시키려고 분립할 때 생겨난다.

61. 신종교(cult) 운동은 단지 낡은 신앙의 새로운 조직이 아니다. 신종교 운동은 ‘새로운 신앙’이며 적어도 조사 대상인 사회 내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신종교 운동은 늘 소규모로 시작한다.

67. 신흥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실제로 새로운 문화를 체득할 소양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할 때 기득권층의 신흥종교 운동 포용은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76. 역사학자들이 ‘초기’ 교화라고 칭하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가 아니라 바울이 세운 교회다. 바울이 세운 교회야말로 역사의 물길을 바꾼, 승리한 교회였다.

90. 문화적 연속성의 원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으려는 인간의 극대화 경향을 포착한 것이다. 신흥종교의 세계관을 채택할 경우, 그 대신에 치러야 하는 비용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해 산정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종교의 전환을 위해 자신이 폐기해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산정될 수 있다.

96. 사도들이 공의회에서 개종자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의했을 때, 그들은 민족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종교를 창출했다. 전승에 의하면 율법과 분리한 후 거둔 첫 결실은 이방인 선교가 급속도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96. 기독교는 이방인보다는 헬라파 유대인에게 갑절의 문화적 연속성을 선사했을 것이다.

111.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고 한참 후까지 성장 곡선을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수를 제공할 만큼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수가 넉넉했다는 것이다.

117. 역병은 이방 종교와 헬라 철학이 설명하고 위로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던 반면, 기독교는 왜 인류가 이런 끔찍한 시대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보다 만족스러운 해명을 제시했고 희망찬, 때로는 활력적인 미래상을 제시했다.

117. 재앙이 닥쳤을 때 기독교인은 더 훌륭하게 대처했고 그 결과는 ‘월등히 높은 생존률’이었다.

118. 역병으로 인구의 상당 비중이 괴멸되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그들을 기성 도덕 질서로 구속했던 대인적 애착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118. 기독교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보여준 우월한 생존률로 말미암아 이교도가 유실된 애착관계를 기독교인과의 새로운 애착관계로 대체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

134. 유대교/기독교 사상의 발전과 함께 세상에 뭔가 독특한 것이 유입되었다. 바로 고도로 ‘사회적인’ 윤리강령을 종교와 결부시키는 것이다.

135. 이교도가 똑같이 낯설게 여긴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발상이었다.

138. 이방 신은 윤리적 요구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윤리적 범죄를 벌하지도 않았다. 인간이 신의 심기를 건드릴 때는 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의례 기준을 어겼을 때뿐이었다.

138. 이교 신들은 뇌물을 받고 다양한 서비스를 수행할지언정 죽음이라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제시하는 않았다. 돌연한 죽음의 그림자가 인생에 드리울 때 기독교인과 이교도가 보인 상이한 반응을 비교하려면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151. 그레코-로만 사회에서는 원치 않는 여아와 기형 남아를 유기하는 것은 합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용인되었으며 사회 전 계층에 걸쳐 빈번하게 행해지던 일이었다.

154. 기독교인은 모든 형태의 영아 살해와 낙태를 금지함으로써 이교도 가운데 존재했던 성비 불균형의 주 원인을 제거했다.

170. 초기 기독교인을 에워쌌던 이교도 세계에서 잉여 남성 수는 아내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하위 문화 내에서는 남편이 공급 부족이었다. 여기에 2차 개종자를 얻을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189. 기독교인의 가족과 출산에 대한 관점은 대부분의 측면에서 이 운동이 유대 사회에서 유래했음을 드러낸다. 그 과정은 매우 가족 지향적이며 출산 장려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독교인은 성행위의 주 목적은 생산이며 그러므로 자녀를 가지는 것이 결혼의 의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227. 거주민들은 소수만 제외하고는 죄다 “온 가족이 옹기종기” 단칸방에 모여 살았다. 그러므로 스탬바우의 말처럼 프라이버시는 “희귀재”였다.

228. 그레코-로만 도시 주민은 공공장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평균적인 “거주지는 잠자고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썼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37. 인종적 다양성과 끊임없는 신착자 유입은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고도의 일탈과 무질서 등 거주민에게 다양한 고통을 초래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레코-로만 도시에서 폭동이 잦았던 주 원인이다.

242. 초기 기독교 선교사가 이 도시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도시 운동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레코-로만 도시의 삶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문화였다.

249. 제대로 분석을 거치면, 종교적 희생(sacrifices)과 낙인(stigma)은 그것이 비록 심각한 사례들이더라도 통상 합리적인 선택을 반영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257. 어떤 종교적 보상장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교류를 통해 확립된다.

257. 개개인은 어떤 종교적 보상장치가 집단적으로 장려, 생산, 소비될 때 그 리스크는 낮고 가치는 높다고 인식한다.

260. 배교를 선택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고문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은 그 종교에 상상을 초월하는 지고의 가치를 부여하며 또한 그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한다. 실제로 기독교 순교자들은 다수의 다른 기독교인에게 자신들의 절개를 보여줄 기회를 가졌고, 그들이 전달한 기독교의 가치는 이교도 구경꾼에게도 깊이 각인되었다.

264. 희생과 낙인은 주류 “교회”를 일탈적 “종파”나 “신종교 집단”으로부터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265. 첫째, 종교집단은 더 높은 수준의 희생과 낙인을 요구함으로써 구성원으로부터 더 높은 평균치의 헌신도와 참여도를 끌어 낸다. 둘째, 더 높은 수준의 헌신과 참여를 요구함으로써 종교 집단은 구성을 위해 더 큰 물질적, 사회적, 종교적 유익을 창출할 수 있다.

269. 순교는 공개적으로 행해졌을 뿐 아니라 종종 대규모 구경꾼들 앞에서 이루어졌다. 종종 오랜 준비기간을 거친 후 이루어졌으며 이 준비기간 중에 순교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열렬하고 직접적인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277. 바울과 베드로와 다른 교회 개척 멤버들이 60년대에 주변을 둘러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3천 명이 채 못되는 기독교인이었다. 예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고 30년 선교 노력의 결실은 미약했다.

280. 60년대의 순교자들은 대속의 증거인 예수의 고난에 자신들의 고난을 더함으로써, 재림 예언의 실패와 소수의 개종자라는 위기를 해소했다.

307. 토마스 로빈스는 사람들은 “관용성이 없는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으로는 ‘개종’(convert)을 했지만 그와 달리 이시스나 오프레우스, 미트라 신종교 집단은 그저 ‘신봉’(adhere)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308. 비배타적 신앙이 배타적 경쟁자의 도전을 받게 되면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은 시장에서는 배타적 기업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배타적 기업이 이기는 이유는 그들이 비용 측면에서 더 고가지만 더 나은 거래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311.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말살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지도층부터 하향식으로 했다. 당연히 교회 지도자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맥멀른에 의하면 이 판단착오는 엘리트층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이교가 상부부터 하향식으로 쉽게 파괴될 수 있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312. 기독교가 성장했던 이유는 기독교인이 치열한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를 통해 소(小) 플리니우스를 그토록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엄청난 종교적 소득을 양산한 기독교인의 “불굴의 의지”가 창출되었다.

321. 여하간 기독교인은 잔인성과 쇼 관람 둘 다 정죄했다.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터툴리안은 독자들을 일깨웠다. 그리고 경기 관람이 일반화되자 기독교인은 이런 ‘경기’를 관람해서는 안 된다고 금했다. 더 중요한 점은 기독교인이 이교도가 관습적으로 가볍게 행하는 잔인성과는 전적으로 양립 불가한 도덕적 비전을 효과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개종자에게 선사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덕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었다.

317. 기독교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비가 주요한 미덕이며 자비로운 신이 인간에게도 자비로울 것으로 요구한다고 가르쳤다.

320. ‘하나님 경외자들’은 율법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320. 디아스포라의 많은 헬라 유대인이 기독교에 큰 매력을 느낀 이유는 바로 부담스럽게 여기던 민족적 정체성의 속박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February 7, 2020: 6:37 pm: bluemosesErudition

“장발은 퇴폐문화”

February 4, 2020: 1:48 pm: bluemosesErudition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 사사키 아타루

February 3, 2020: 2:03 pm: bluemosesErudition

“교육부는 투자는 없이 입학 정원부터 등록금, 커리큘럼, 재정 운용까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규제의 울타리에 대학을 묶어두려는 시도를 해왔고, 이를 고등교육 정책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왔다. 국가가 대학 교육의 책임을 지고 과감한 투자를 하는 유럽이나, 감독과 관리를 철저히 하되 자율권을 주는 북미권과는 매우 다른 전개다. 민간에 맡기지도, 국가가 나서지도 않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의하면, 분석 대상 18개 대학 중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100% 확보한 곳은 없으며, 90% 이상 확보한 대학도 네 곳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 내놓은 자료는 더 놀랍다. 고등교육을 위한 공공재원 비중 순위는 35개국 중 31위이다. 2019년 대학생 1인당 정부 부담 공교육비는 3985달러(약 476만 원)로 OECD 평균인 1만267달러(약 1226만 원)보다 한참 적다. … 이 과정에서 대학의 경쟁력도 날로 허약해졌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대학 시스템의 질은 2012년 144개국 중 44위였지만 2017년 137개국 중 81위로 변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교육경쟁력 평가에서 대학 교육경쟁력은 2012년 59개국 중 42위였지만 2019년에는 63개국 중 55위로 급락했다.”(김석호)

: 3:06 am: bluemosesErudition

“스페인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에 모두 돈(Don)을 쓴다.”

February 2, 2020: 8:06 pm: bluemosesErudition

“풀냄새라고 있지요? 풀을 베었을 때 나는 냄새. 사람들은 그것을 상쾌하고 신선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베인 풀이 옆의 풀에게 경고하는 게 풀냄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옆의 풀이 도망칠 수 있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그럼에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요 시 아닐까 싶어요.”(이성복)

January 31, 2020: 12:09 pm: bluemosesErudition

“소설가 곽재식은 전업작가가 아니다. 그는 한 화학 회사에서 행정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이다. 종종 연구원이기도 하다. 인터뷰 시간을 평일 점심으로, 장소를 자신의 회사 근처로 정한 것도 그가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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