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6, 2018: 3:00 am: bluemosesErudition

1.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데이비드 하비)

2. 제1제정(1799) - 부르봉 왕정 복고(1815) - 7월 왕정(1830) - 제2공화국(1848~1851)

3.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마르크스)

4. 제2제정(1851~1870)

5.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발터 벤야민)

6. 보불전쟁(1870)

7. 독일통일(1871)

: 2:20 am: bluemosesErudition

나는 아팠고, 졸았고, 죽어 있었다

: 1:59 am: bluemosesErudition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허수경)

October 5, 2018: 2:50 am: bluemosesErudition

가볍게, 처리하는 법, 시시한 자를 넘어서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October 4, 2018: 2:20 am: bluemosesErudition

OPS(= SLG + OBP) - 이정후 0.867, 강백호 0.860

October 3, 2018: 2:50 pm: bluemosesErudition

10월 초, 2017년에 출간된 시ㆍ산문 2권을 읽었다. 하나는 제발트의 <자연을 따라. 기초시>고 다른 하나는 함기석의 <고독한 대화: 제로, 무한, 그리고 눈사람> 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개념과 소재의 장악에 있다.

October 2, 2018: 1:23 am: bluemosesErudition

하나님의 함께 하심. 점점 강성하게 하시고, 높이시고, 앞서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는 분.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자. 하나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다. 다윗을 대적하면 블레셋은 하나님과 싸우게 되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패배하나 의지하려고 하자 승리했다. 다윗은 당연해 보여도 기도하여 묻고 순종하였다. 슬픔을 인정하는 용기. 어찌할 바를 몰라 기도합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September 30, 2018: 12:39 pm: bluemosesErudition

괴저. 혈액 공급이 되지 않거나 세균 때문에 비교적 큰 덩어리의 조직이 죽는 현상.

: 3:22 am: bluemosesErudition

제발트는 폐허에서 태어났다. 1944년 독일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이 남긴 쇠락한 풍경을 보며 자라난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면서 산다.

그가 왜 쇠락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책의 제목을 ‘토성의 고리(Saturn’s ring)’라고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토성이 생성될 무렵 부서저 나간 먼지와 얼음이 궤도를 떠나지 못한 채 레코드판 모양으로 토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토성의 고리다. 생성에 기여했으나 이제는 부서저버린 것들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잔해 때문에 토성은 가장 아름다운 행성이 될 수 있었다. 잔해들이 토성의 미학을 완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September 27, 2018: 1:15 am: bluemosesErudition

내가 어떤 시인을 일러 ‘시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면 표현이 야단스럽다고 나무랄 분들이 있겠지만 그 시인이 이성복이라고 하면 과연 그렇다고 고개 끄덕일 분이 많을 것이다. 어딘가에 “좋은 시집은 나쁜 시집이다. 시를 쓰고 싶게 만들었다가, 결국 시를 포기하게 만든다”라고 적었다.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가 그야말로 그렇다. 이 시집에 사로잡혀 시인이 되어버리고 만 분들을 여럿 알고 있는데, 이 시집에 좌절하여 시인이 못 된 이들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10년을 기다려서 이성복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를 받아들게 되었다. 말은 쉬워졌고 뜻은 깊어졌다. 이 시집을 한마디로 줄이면 그냥 “생(生)이여”가 될 것이다. 감탄과 연민과 혐오가 뒤엉켜 있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그런 부름. 시인이 자주 동물과 식물에 기대어 말하는 것은 그런 생의 알몸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간혹 사람에 대해 말할 땐 소화기와 생식기를 언급한다. 헛된 꾸밈을 덜어내고 보면 인간 역시 입과 성기가 달려 있는 하나의 목숨일 뿐이라는 취지가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이런 취지가 이 시인 특유의 얼얼한 직유(直喩, simile)와 함께 읽는 이를 덮친다. 그는 비닐하우스가 “어떤 정신 나간 깨달음처럼 허옇게” 펼쳐져 있다고 말하고, 강이 “널어놓은 미래의 수의(壽衣)처럼” 흘러간다고 말하고, 땅은 “당장 걷어내야 할 내장처럼” 역하다고 말한다. 또 철이 안 든 자신을 “검은 비닐봉지와 싸우는 반쯤 눈이 가린 삽살개” 같다고 말하고, 문득 자신의 생이 “나를 키웠을지도 모를 새엄마처럼 낯설다”라고 말하고, 또 “노란 작은 오이꽃 속에 묻어 있는 진딧물처럼 내가 부끄러워졌다”라고 말한다.

내용에 대해서건 표현에 대해서건 길고 자세하게 말해야 마땅한 시집이지만 여기서는 도리가 없으니 시 두 편만 옮겨놓자.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 남들이 보면 부리 긴 새가 겁에 질린 무당벌레를 삼켰다 하리라 목 없는 무당개구리를 초록 물뱀이 삼켰다 하리라 하지만 나는 생쥐같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생에 대한 각서’ 전문)

“겨울에 죽은 목단 나무 가지에서 꽃을 꺾었다 끈적한 씨방이 갈라지고 터져나온 꽃, 죽은 딸을 흉내 내는 실성한 엄마처럼 꽃 떨어진 자리도 꽃을 닮았다 여름 꽃을 보지 못했어도 우리는 겨울 꽃이 될 수 있다 희부옇게 타다 만 배꼽 같은 꽃,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 다리 꽃, 철사로 동여매도 아프지는 않을 거다 그 꽃잎 마른 번데기처럼 딱딱하고, 눈비가 씻어간 고름 찾을 수 없다, 죽음이 불타버린 꽃”(‘죽음에 대한 각서’ 전문)

적어놓기는 했지만 덧붙일 말이 없다. 다른 시를 인용했으면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두 시를 열고 들어가야 이 시집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닥이 안 보이는 물속 같은 이 시들을 며칠 동안 읽었으나 나는 여전히 바닥에 닿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것은 이성복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향가의 깊이 같은 것마저 느껴지게 하는 그의 시를 나는 무슨 화두(話頭)처럼 받아든다.

_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마지막 글(한겨레21, 제9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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