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공부에 입문한 이는 ‘적어도 2천년’이라는 학문의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만 하고, 그에 따라 과도한 —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 야망을 버린 상태에서, 기초 분야들, 이를테면 서양 철학의 경우,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등의 교과서를 읽거나 대철학자들이 제시한 주요 문제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 과목 불문, 동서양 불문하고 철학과 학부 개설과목들은 골고루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논어]] 원문을 해독은 커녕 읽을 줄도 모르는 서양철학박사들 좀 어이없다). 이때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역사, 문학, 정치, 경제, 사회, 자연과학 등에 관한 폭넓은 독서이다. ‘철학과 다니는 학생에게 [[안티고네]]는 도대체 왜 읽으라는 거야’하면 글러먹은 것이다(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초보 단계를 벗어나면, 또는 대학원 석사과정 수준 쯤으로 들어가면, 텍스트 하나를 붙잡고 상세하고 깊이있게, 다시 말해서 텍스트를 완전히 주해하면서 읽는 훈련과 철학사를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철학사라는 넓이 속에서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는 것이다. 이 때 참고문헌을 지나치게 많이 읽거나 다른 학문의 책을 붙잡고 끙끙대는 것은 공연한 짓이다(자신이 천재라고 자부한다면 괜찮다).”

  “이 과정을 마치고 심화된 단계로 들어서면 -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로 파고들어야 한다. 일테면 석사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를 전공하고서, 박사 과정에서 막스 베버로 가면 안 된다 - 철학사의 맥락에서 도출된 주제를 정한 뒤, 그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의미있는 철학자의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해당 주제를 거론한 다른 철학자들(이들은 철학사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의 텍스트를 함께 읽고, 관련 학자들의 논의를 그 아래에 배열하여 하나의 주제를 일정한 넓이와 깊이에 따라 정리하고 자신의 입론을 세워야 한다. 이때도 ‘다학제적 연구’를 하겠다는 황당한 야심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 그건 심화된 공부가 정리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착수해도 전혀 늦지 않다.”

  “철학 고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사상사의 고전을 읽거나 정평있는 참고서를 번역(1년에 한 권 정도는 하는 것이 게으름 퇴치에 도움이 되며, 한국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도 된다)하거나 특정한 주제에 관한 논의를 다룬 책들을 깊은 것부터 얕은 것까지 두루 꿰어 읽어보는 것 등이 이때 해볼만한 것이며, 이 책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과 같은, 대가로 알려진 이가 쓴 일종의 동서 사상 비교 서적 등을 더러 — 2년에 한 권 정도 — 읽어보는 것도 공부의 깊이와 넓이를 확인하고 매듭짓는 데 좋다.”

… “철학은 방법론 제시로도 충분하지 않을까(강유원, 0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