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015

April 30, 2015: 12:18 pm: bluemosesErudition

PHP 2:12-13 ESV

Therefore, my beloved, as you have always obeyed, so now, not only as in my presence but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 2:07 am: bluemosesErudition

격려는 헤아려 바로 공연히 하고, 비난은 에둘러 늦춰 은밀히 하자.

April 29, 2015: 11:15 pm: bluemosesErudition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

April 28, 2015: 11:44 am: bluemosesErudition

“The fear of man lays a snare, but whoever trusts in the Lord is safe.”(PRO 29:25 ESV)

David confessed that in crisis of war the help of people was futile and he relied completely on God. Think deeply about what it is that God might want from us.

: 10:46 am: bluemosesErudition

煙輕靄冪林間 / 全是徐熙畫裏山 / 看了東坡詩一卷 / 夕陽初下詔門關

: 10:41 am: bluemosesErudition

“食與俱嚥 寢與俱夢 坐與俱坐 行與俱行.” _ 李滉

: 10:17 am: bluemosesErudition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216만 표를 얻은 조봉암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은 그에게 국가변란과 간첩의 혐의를 씌워 마침내 사법살인을 하기에 이른다. … 사형장에서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조봉암은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는 없다. 나는 이(승만)박사와 싸우다가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는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면서 입회목사에게 누가복음 23장 22절을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빌라도)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내놓으리라 한 때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읽기가 끝나자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조봉암은 일어나 교수대로 향했다는 것이다. 조봉암을 죽인 이승만은 9개월 뒤, 4.19의 분노와 함성에 쫓겨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고 조봉암은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의 재심판결로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April 27, 2015: 7:35 pm: bluemosesErudition

“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_ 노자, 도덕경 15장

April 26, 2015: 7:02 pm: bluemosesErudition

“일제강점기에는 4월에 신학기를 시작했으나 1945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가을학기제로 바뀐 경험이 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매년 한 달씩 앞당기는 방법으로 학사일정을 조정해 1953년 봄신학기(4월 신학기)로 돌아갔고 현재와 같은 3월 신학기는 1961년 정착됐다.”

“가을학기제로의 전환은 전술한 것과 같이 결코 일부 유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현 3월 학기제는 일제침략기 때의 4월 학기제의 영향을 받아 1961년 군사정부 시절 부터 시작된 것이지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근대교육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1895년의 ‘한성사범학교규칙’, 1900년의 ‘중학교규칙’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을학기제가 우리 문화에 가까웠다.”

April 24, 2015: 4:15 pm: bluemosesErudition

“1785년(정조 9, 24세) 12월 1일, 임금이 춘당대에 친히 나와 식당에서 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식당명(食堂名)을 짓도록 했는데, 다산이 수석을 차지하여 《대전통편(大典通編)》 한 질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