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 아니라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민영화는 주권을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민영화의 실체는 헌법과 시민주권을 시장에 넘기는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가치보다 헌법과 시민주권의 가치가 더 우위에 있다.”
“아우슈비츠가 가장 왕성하게 운영될 때, 매일 1만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전체적으로 110만 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했는데, 12만 2000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는 모든 홀로코스트 희생자 중 5분의 1이 아우슈비츠에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가 그토록 혐오스러운 이유는 그 수용소의 효율성 때문이다.”
“‘빛나는 평화’라는 뜻을 가진 쇼와(昭和) 시대(1926년 12월 25일 ~ 1989년 1월 7일). 전쟁의 고통으로 가득찬 시대였다.”
“취재팀이 송파 관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A업체 상위 직급자들의 수당 명세서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15개월 동안 A업체에 등록된 회원 수(탈퇴자 포함)는 5300여 명. 이 중 상위 직급자인 골드플래너(GP)는 153명, 마스터플래너(MP)는 125명, 수퍼마스터플래너(SMP)는 29명이다. 자료 분석 결과 … ‘성공자’로 불리며 회원들의 선망 대상인 MP가 월평균 190여 만원을 벌었다.”
“어느 평론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김종인이냐 이헌재냐의 선택에서 이헌재로 간 순간에 결정됐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권의) 초대 총리, 초대 재경부 장관, 다음 재경부 장관까지 하마평만 계속 나던데, 정작 나는 대선까지 도와주고 대선 후에는 이미 정권이 성공하리라는 기대를 접은 상황이었다. 2001년 1월인가에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 대통령이 날 보자고 하더라. 그때는 ‘이런 사람이 하면 나라가 좀 바뀔 수 있겠다’ 생각했다. 서민적으로 사고하고, 재계의 힘이 세지는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더라. 그래서 ‘도와주마’ 하고 약속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기고 후보가 되고 나서 몇 마디 충고를 했는데, 얼굴이 확 굳어지더라. 이미 구름 위에 떠 있었던 거다. 그 뒤 몇 번 더 실망하고는 기대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