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018

July 31, 2018: 4:32 pm: bluemosesErudition

“주요 정책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연도별 시뮬레이션이 함께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 갈등 사안의 상당수는 시간축을 길게 잡고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문제들이다. 지금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었다고 후회할 사안들, 혹은 지금은 집단 간 이익다툼의 문제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생의 문제인 경우들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같은 정책이라도 지금의 의미와 10년 후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어떤 정책을 하면 향후 10년간 해마다 무슨 변화를 겪을 것이고 하지 않으면 10년 후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이런 증거기반 정책을 가지고 대통령이나 책임있는 당국자가 진정성 있게 소통한다면 이해해줄 국민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정책의 합리성은 그만큼 증발한다. 정무적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들은 해당 정책에 대해 실무자 수준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분리해서 다루는 기존의 관행도 재고해야 한다. 재정에 대한 세밀한 고려 없이 사회정책이 제시되고, 기재부가 재정을 이유로 사회정책을 난도질하고, 그로 인한 소모적 논쟁이 정책의 동력을 잃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정부 내에서 부문별 사회정책의 필요성과 재정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합의된 상태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해야 한다.”

: 4:19 pm: bluemosesErudition

단순하게 말하자. 발견이 없는 시. 생명력이 없다. 발견이 없는 시. 그것은 사산이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시. 아니, 아예 죽어서 나오는 시.

좋은 시란 무엇인가.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좋은 시는 무엇 때문에 좋은 시인가. 이 간단치 않은 질문 / 자문 앞에다 나는 세 가지 시약이 든 병을 꺼내 놓고는 한다. 고백과 묘사, 그리고 발견이라는 시약병 셋.

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세 시약은 시를 평가할 때 제법 능력을 발휘한다. 한 편의 시, 한 권의 시집뿐만이 아니라 한 시인의 전체 시 세계까지 이 세 가지 시약으로 분석 / 해석할 수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모든 시는 이 세 가지 시약의 합성, 즉 이 셋의 화학이다.

고백은 정직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정직할수록 고백은 아프다. 고백은 (원)죄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묘사는 운명적으로 대상에 종속한다. 그러나 대상과 하나(혹은 분리)되려고 하면 할수록 묘사는 차가워진다. 그리하여 고백의 끝, 누추할 때가 많다. 묘사의 끝, 묘사하려는 대상 앞에서 무릎 꿇을 때가 많다.

고백과 묘사의 정점은 아픔의 미학이다. 나는 아프다, 나는 이렇게/ 이토록/ 다른 아픔과 다르게 아프다, 라고 말하는 시들. 그러니 아픔의 미학, 아직 미성년이다. 아프다, 라는 말(고백)을 버리고 이렇게(묘사)에만 머물 수 있다. 그러나 묘사,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간섭하지 못한다. 생래적으로, 궁극적으로 묘사는 가치를 배제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발견이다. 문제는 발견이다. 발견을 외면하는 고백, 발견을 생산하지 못하는 묘사, 에너지가 없다.

고백과 묘사가 발견을 만날 때, 고백은 고백대로, 묘사는 묘사대로 자기 형태와 생명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때, 발견은 고백과 묘사라는 구체적인 몸을 얻는다. 고백, 묘사, 발견이 이루어 내는 단단하고 환한 구조물 – 트라이앵글.

고백이 내부 / 과거를 향한 들여다보기라면, 묘사는 타자 / 현재에 대한 집중이다. 고백이 윤리라면 묘사는 과학이다. 그러나 아직, 고백과 묘사는 완성체가 아니다. 고백과 묘사가 발견을 지향할 때, 그때부터 진화가 진행된다. 발견과 한 몸을 이루려는 그 길 에서 한 방을, 한 줌, 마침내 한 문장의 발견이 태어난다. 시간과 공간의 전부를 품어 안는 발견. 전체를 가리키는 하나. 하나 속에 들어앉은 전체.

이 발견 앞에서 인간과 세계는 아프다. 매우 낯익은 것들이 돌연, 낯설어진다.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니고,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돌연한, 기쁜 아픔. 이 기쁜 아픔을 제공하는 시만이 공간과 시간을 견뎌 낸다. 시의 자궁은 고백과 묘사, 그리고 발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_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이문재, “<소금인형>에서 <소금>으로”

: 3:35 pm: bluemosesErudition

필체와 마찬가지로, 김언의 한 문장은 동의되지 않는다. “언어에 갇혀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시인이라니.

: 12:37 pm: bluemosesErudition

Principal Investigator

: 10:26 am: bluemosesErudition

1999년 5월 코소보 분쟁 도중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이 미군에 폭격당했다. 대사관 직원 3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 미국은 낡은 지도 탓에 오폭을 했다며 사과했다. 중국 정부는 ‘야만적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베이징 미국대사관 앞에서 대규모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그 시절 학생들은 교사들에게서 “나라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40년 전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르러서야 중국은 본격적으로 힘을 키웠다. 그리고 감췄다. 1991년 소련 쿠데타 당시 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덩샤오핑은 ‘도광양회(칼빛을 감추고 힘을 기르라), 절부당두(결코 머리가 되지 말라), 유소작위(해야 할 일을 하라)’라는 답변을 남겼다. 다른 나라 사정에 끼어들지 말고, 각국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 스스로의 평화적 발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덩샤오핑은 이런 노선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100년간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 10:07 am: bluemosesErudition

01.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16.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 10:02 am: bluemosesErudition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하기 쉬운 일에서 비롯되며,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일을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것이 작았을 때 해야 한다. 천길 높이의 큰 둑이 무너지는 것은 결국 사소한 구멍이 커져서 그런 것이며, 백척 높이의 집도 조그만 연기 구멍에 의해 타버린다.” _ 한비자, <유로>편

July 30, 2018: 10:38 pm: bluemosesErudition

정성평가를 옹호하고자 배우자 선별 안목을 거론했다고 한다. 이혼율을 부러 간과한 것이겠지.

: 10:47 am: bluemosesErudition

“궁궐에서 『논어』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내각의 아전이 와서는 소매 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보이며 말하기를 ‘이건 내일 강독(講讀)할 논어의 장(章)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며 ‘이런 걸 어떻게 강독할 사람이 얻어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더니 아전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임금께서 지시하신 겁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지만 미리 엿보는 일은 할 수 없다. 마땅히 『논어』전편을 읽어보리라’라고 하니, 그 아전은 웃으면서 돌아갔다. 그 다음날 경연(經筵)에 나가니 임금이 각신(閣臣)에게 말씀하기를 ‘정약용은 별도로 다른 장(章)을 강하도록 하라’고 했다. 강을 틀리지 않고 끝내자 임금이 웃으시며 ‘과연 전편을 읽었구나!’라고 했다”(자찬묘지명 집중본)

July 29, 2018: 11:41 pm: bluemosesErudition

“사내는 책을 탁, 덮는다 방금 누군가 나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