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7

November 30, 2017: 11:20 pm: bluemosesErudition

조씨 일가 4대를 거친 삼국 최후의 승자, 사마의

: 11:04 pm: bluemosesErudition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_ 함민복, “긍정적인 밥”,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비평사, 1996.

: 10:58 pm: bluemosesErudition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_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

: 10:46 pm: bluemosesErudition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배꼽 / 그 구멍 속에는 / 실물대(實物大) 호랑이 가죽에 / 석필(石筆)로 쓴 한 비전(秘傳)이 들어 있는데 / 옛날에 그걸 꺼내 본 사람이 어떤 뒤에 / 그 내용을 입김으로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사람이 / 오로지 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 일견 그렇듯해 보이는 작품이 대부분, / 거기 들어 있는 감정이며 / 알량한 앎이며가 대부분 / 실은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 / 그런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 그런 사람이 만일 자의에 타의 뇌동으로 / 시인 행세를 한다면 / 그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 가짜 시인이니라.

_ 정현종, “한 비전”, <그림자에 불타다>, 문학과지성사, 2015.

: 10:41 pm: bluemosesErudition

파리에서 누릴 수 있는 그러한 행복의 자유에는 가혹한 시련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지도교수인 ‘아바스타도’와 면담할 때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가 어떤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건 동의하겠지만, 연구방법은 반드시 기호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이다. 나로서는 그의 요구가 너무나 뜻밖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논문을 써야할지 막막해지기만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기호학에 무지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 연구에 필요한 연구방법이라면 기껏해야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이면 충분할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그 교수의 엄격한 주문은 나 스스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생’임을 깨닫게 했다. 또한 그 교수가 초현실주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쓴 사람이라는 정보만 갖고, 그 대학의 기호학 연구소 소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나의 불찰이라는 자책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지도교수나 대학을 바꿀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 대학의 기호학 강의들을 청강하면서 기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가 고행처럼 생각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어야 하는 데, 무엇 때문에 이런 방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회의가 가시지 않아 공부의 진척이 순조롭지도 않았다. 그런 가운데 문학작품의 형태적 중요성과 그것의 분석적 시각의 필요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지도교수의 불어권 아프리카 소설들의 기호학적 분석에 관한 강의를 들은 것은 완전히 새로운 학문세계에 진입한 것 같은 개안의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연구방법에 대한 그의 요구 때문에 엘뤼아르의 시를 포기하고 초현실주의의 핵심인 브르통의 산문 텍스트를 논문 주제로 삼게 된 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뒤늦은 결정은, 단순한 감성적 선택이 삶의 방향을 얼마나 크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한 운명적 사건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가지 않은 길’을 뒤늦게나마 가게 되어 운명의 전환뿐 아니라 학문적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변화 외에도 중요한 것은 파리에서 푸코의 책을 발견하게 된 점이다.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읽게 된 ‘감시와 처벌’은 감동과 전율이 느껴지는 독서 체험을 갖게 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정보화 사회는 거대한 감옥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감옥의 죄수처럼 감시받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기록되고 평가되고 서열화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한 웅변으로 들었다. 나는 귀국하면 푸코를 소개하고 연구하는 일을 앞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로 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기도 했다. 프로스트의 또 다른 시, ‘눈 내리는 저녁 숲에 멈춰 서서’의 마지막 구절처럼, 그 일은 나에게 쉬지 않고 ‘가야 할 먼 길’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약속을 과연 얼마나 지킨 것일까?

오 명예교수는 “이 책으로 푸코 연구를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에 멈춰 서서’의 마지막 구절 ‘쉬지 않고 계속 가야 할 먼 길’이 자신에게는 한국에서 푸코를 소개하고 연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오 명예교수는 “그의 책을 읽고 새롭게 떠오르는 사유의 경험을 갖기 위해서라도 (연구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 10:10 pm: bluemosesErudition

Whose woods ther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 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_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 1922(1923) / 정현종 번역

: 6:33 pm: bluemosesErudition

동급의 행위, 아니 예전만도 못한데, 왜 더 쓰라린가요

- 審級이 달라졌어

: 5:18 pm: bluemosesErudition

“꿈인가 해서 다시 그냥 어, 이렇게 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는데, 떴는데 아닌 거예요”

: 4:32 pm: bluemosesErudition

어느 벽보판 앞
현상수배범 전단지 사진 속에
내 얼굴이 있었다
안경을 끼고 입꼬리가 축 처진 게
영락없이 내 얼굴이었다
내가 무슨 대죄를 지어
나도 모르게 수배되고 있는지 몰라
벽보판 앞을 평생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알았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늙어버린 죄

_ 정호승, “어느 벽보판 앞에서”, <밥값>, 창비, 2010.

: 4:28 pm: bluemosesErudition

“나는 왜 이러는지 세상을 자꾸만 / 내려다보려고만 한다 그럴 적마다 / 나는 왜 그러는지 세상이 자꾸만 / 짠하고, 증오심 다음은 측은한 마음뿐이고, 아무리 보아도 / 그것은 수평이 아니다 승강구 2단에 서서 / 졸고 있는 너를 평면도로 보면 / 아버지 실직 후 병들어 누움, / 어머니 파출부 나감, / 남동생 중3, 신문팔이 / 生計는 고단하고 고단하다 / 뻔하다”

_ 황지우, “(95) 청량리-서울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