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17

May 31, 2017: 12:19 pm: bluemosesErudition

서천석은 “EBS 다큐의 너무 저렴한 문제의식”을 혼쭐낸다. 학습의 동기(개천의 용)에서 교육의 목적(숨겨진 재능이 없는 사회)으로, 회개하고 정진할 것을 권고한다.

김한중 PD의 댓글은 설웁다. 본인의 열심만 혼신인 듯 부둥켜 안고, 작위적 연출을 견인하는 선택적 인지는 깨닫지 못한다. 세금으로 제작한 다큐. 계몽의 옷을 입힌 선동. 공익은 어렵더라도 교훈이라도 얻길 바란다.

: 3:50 am: bluemosesErudition

배양, 숙성, 뜸. 밀폐된 자궁.

: 3:36 am: bluemosesErudition

첫 권의 첫 시.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_ 최승자, 「일찌기 나는」(『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지성 사 1981)

: 3:30 am: bluemosesErudition

무명으로 만든 수건

: 3:02 am: bluemosesErudition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 3:00 am: bluemosesErudition

시, “나는 이렇게 들었다”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 2:58 am: bluemosesErudition

1984년 최승자는 두 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를 출간하였다. ‘Y를 위하여’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오 개새끼 / 못 잊어!”

: 2:54 am: bluemosesErudition

도덕경 1장 첫 문장

May 30, 2017: 6:59 pm: bluemosesErudition

하이데거에 따르면, 시 짓기란 “낱말에 의한 존재의 수립”이고, 횔덜린은 “신들의 흔적을 죽은 자들에게로 가져오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사유함과 시 지음 사이에는, 이 둘이 모두 언어에 헌신하며 언어를 위해 애쓰고 자신을 아낌 없이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숨겨진 친밀함이 편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또한 갈라진 틈이 있다. 왜냐하면 이 둘은 <가장 멀리 떨어진 산 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5:20 pm: bluemosesErudition

멕시코, 바퀴벌레(= The Cockr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