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5

November 30, 2015: 11:44 pm: bluemosesErudition

2013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대교협)

: 12:32 pm: bluemosesErudition

“나는 요한 묵시록에 대한 어떤 주석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시간의 소멸에 대한 나의 바람을 표현했을 뿐입니다.”(올리비에 메시앙)

: 12:04 pm: bluemosesErudition

위선이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다.

: 11:31 am: bluemosesErudition

C.C.C. 채플 인원 수 요인 분석

: 11:23 am: bluemosesErudition

이슬람의 렌즈로 본 시국 _ 인천 송도와 전북 익산

“할랄인증 식품의 성장을 조용히 옆에서 지원해주면 좋을 텐데,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 이후 정부 모든 기관이 저마다 대대적으로 나서 할랄 돈벌이에 나서는 상황이 걱정스럽기도 하다.”(이주화)

: 11:16 am: bluemosesErudition

디턴은 경제학 모델이 ‘이래야 한다’고 상정하는 세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 빈곤율이 사상 처음으로 10% 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읽을 때, 당신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을 겁니다. 답은 가계 서베이와 자료 수집, 복지 측정에 대한 디턴의 작업에 있습니다.” “디턴의 주요 업적은 세계 빈곤을 이해하고 측정하는 부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수요측정 체계(estimation of demand systems) 에 대한 연구를 정교함과 보편성의 새로운 단계로 끌어 올렸다. 그가 35년 전에 존 뮬바우어와 함께 소개한 ‘준이상수요체계’(AIDS·Almost Ideal Demand System)’와 그 이후의 후속 작업들은 오늘날 학계는 물론, 실무 영역의 정책 평가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2. 총소비(aggregate consumption)에 대한 디턴의 연구는 소비와 저축 변동 분야를 다루는 미시계량경제학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특정한 불확실성과 유동성 제약 하에서 나타나는 각 개인의 역학적인 소비 행태에 대한 분석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반복되는 횡단자료에서 패널을 설계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이는 실제 패널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각 개인의 행동 경과를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3. 디턴은 개발도상국에서의 서베이 자료, 특히 소비에 대한 자료를 생활수준과 빈곤 측정에 활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을 대강의 거시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적 영역에서 고품질의 미시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적 연구가 주가 되는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November 28, 2015: 4:10 pm: bluemosesErudition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얼어 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_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1979)

: 4:04 pm: bluemosesErudition

한글 = 소리글자 + 소리글자

November 27, 2015: 3:38 pm: bluemosesErudition

1 Corinthians 14:20, 26 ESV

Brothers, do not be children in your thinking. Be infants in evil, but in your thinking be mature. What then, brothers? When you come together, each one has a hymn, a lesson, a revelation, a tongue, or an interpretation. Let all things be done for building up.

November 26, 2015: 11:40 am: bluemosesErudition

기쁨(喜)과 노여움(怒), 슬픔(哀)과 즐거움(樂) 등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어찌 일찍이 선하지 않았겠는가? 감정으로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으면 어떤 경우든 선하지 않음이 없다. 드러나서 절도에 맞지 않은 연후에야 비로소 선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近思錄』, 「道體」 제38조. “性卽理也. 天下之理, 原其所自, 未有不善. 喜怒哀樂未發, 何嘗不善. 發而中節, 則無往而不善. 發不中節, 然後爲不善.”).

정이천의 위 문장은 원래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내용을 수양론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중용』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고 ‘화’는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중용(中庸)』.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天下之大本也, 和也者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성리학자들은 『중용』을 이어받아 ‘중화에 이르는 일(致中和)’을 수양의 목표로 삼았다. 『중용』에서는 희·노·애·락 등 감정의 발동 여부에 따라 마음을 ‘미발’과 ‘이발’의 국면으로 구분하고, 미발의 ‘중’을 체(體=大本)로, 이발의 ‘화’를 용(用=達道)으로 규정하였다. 성리학적 수양론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이 아직 개시되지 않았을 때에 그 본체인 ‘중’을 존양(存養)하고, 개시되었을 때는 그 ‘용’인 감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