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신학을 연구하려고 … 도널드 데이튼 교수가 있던 드류 대학교로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드류 대학교에서 데이튼 교수의 첫 수업은 ‘미국 복음주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업에서 찰스 피니를 만났습니다. 찰스 피니는 회심과 노예제도 반대를 한 묶음으로 보았습니다. 찰스 피니의 영향 아래 있던 복음주의자들은 이후에 여성운동이나 도시빈민 구제사역을 주도했습니다. 저는 저의 성결교 신앙의 배경이 이런 전통에 잇대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짐 월리스의 책을 통해서 ‘복음주의’에 남아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성의 개념이 모호하긴 합니다. … 제 나름대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간 안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졌던 이성, 감성, 의지, 이런 것들이 있듯이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 ‘패컬티’(faculty)가 있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인간을 종교적 존재, ‘호모 렐리기우스’(homo religius)라고 규정하잖아요. 그럼 그게 뭘까? 조나단 에드워즈는 ‘종교적 감성’(religious affections)이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에드워즈가 1차 대각성 운동을 경험하고 나서 이런 영적 체험들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종교적 감성’이라 명명합니다. 이성이나 감정으로 환원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에드워즈는 그것을 ‘종교적 감성’이라 부릅니다. 필링(feeling)이나 이모션(emotion)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어펙션(affec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용어를 백 년이 지나서 슐라이어마허가 ‘절대의존감정’이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는 칸트식의 이성을 통한 인식이 아니라,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안에 있는 생득적 요소를 제안합니다. 거의 비슷하게 퀘이커교도인 조지 폭스가 ‘내적인 빛’(inner light)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성으로 환원되지도 않고 감정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의 신적 접촉이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고유한 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 똑같습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궁극적 관심도 다 하나라고 보고, 떠나는 이유도 하나라고 봐요. ‘가나안 성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 사람들이 종교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짜’를 보는 겁니다. 진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여주지 못하니까 나간 것이죠.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 중에도 교회를 떠나고 싶은 갈등을 가진 사람이 아마도 나간 사람만큼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들 모두 하나님을 경험하고, 세상과 차원이 다른 공동체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기업, 정부, 학교 등 그들이 속해 있는 모든 곳에서 생존을 염려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교회마저 맘몬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실망한 겁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된 거죠. 저는 가나안 성도 현상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둘 중 하나인데, 신앙을 버리고 세속화하거나 다시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시 기존의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을 영접할 교회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 세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초대교회 유무상통의 공동체, 더불어 살아가는 교회, 부자가 약자를 끌어안고 같이 가는 교회, 강자가 약자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는 교회입니다. 앞으로는 복음의 본질을 구현해낼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있는 교회들이 작지만 놀라운 일을 해내는 시대가 올 거라고 봅니다.”
_ 매일성경 순 인터뷰, 배덕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