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1

November 27, 2011: 1:18 pm: bluemosesErudition

종, 섬김, 낮아짐, 내려놓음 … 더 이상 이러한 단어들을 발설하지 않겠다. 우리는 성화를 욕망의 억압 내지 의지의 복종과 혼동하고 있다. 일상의 수련은 교리의 강요가 아니라 그것에의 감화이다. 제자화의 관건은 언제나 이미 욕동 즉, 자원하는 심령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기는 어디서 발원하는 것일까. 적어도 기복은 아닐 것이다.

* 악한 충동은 비판을 종용하나 그것의 본질은 질정이 아닌 정죄다. 회개하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November 25, 2011: 3:15 pm: bluemosesErudition

“먼저 2년 미만의 사회초년생으로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 넘는 경우에는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평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잡코리아 HR사업본부장 김정철)

November 23, 2011: 6:30 pm: bluemosesErudition

서울서체 (남산, 한강)

November 21, 2011: 2:47 pm: bluemosesErudition

1. System Back-up : OA, DB, Manual & Up-date

2. Screening File-up : 2009 ~ 2012

November 18, 2011: 9:35 pm: bluemosesErudition

“여기에 나오는 이론들은 대부분 복잡하고 많은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지면에서 그것을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조건들 속에서 피상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였다. 모든 철학 이론은 하나의 핵을 지닌다. 즉 거기서부터 이론이 펼쳐지는 근본사상이 있다. 그 사상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론의 다양한 측면은 저절로 한번에 짜 맞추어지게 된다. 따라서 나는 수많은 말의 껍질을 벗기고 이 철학적 핵을 뽑아내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각각의 예술 사상을 명확하게 만들고자 했다.”

* 미하엘 하우스켈러(1998[2003]). 김현희(옮김). <예술 앞에 선 철학자: 플라톤에서 단토까지, 미학의 입장들>. 이론과실천.

November 17, 2011: 4:14 pm: bluemosesErudition

“인간 본성은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때에 비해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치이론에서 새롭다는 것이 반드시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래되었다해서 꼭 결함있는 것은 아니다.”(한스 모겐소)

* 인간 본성의 이해는 모든 학문의 기반이다. 굳이 인문학의 효용을 입증해야 하는가.

November 16, 2011: 12:29 am: bluemosesErudition

결국 관건은, 기질과 환경을 토대로 영성이 주형하는 ‘마음’이다.

November 15, 2011: 11:52 pm: bluemosesErudition

조선은 성리학의 이상을 의지적으로 추구한 사대부의 국가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는 뜻한 바를 갈망하지 않았다. 마음공부는 허황된 바람인가. “성리학은 한마디로 ‘마음교육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마음’ 및 ‘마음의 교육적 형성과 변화’의 문제를 중심 관심사로 삼고 있다. … 경과 격물치지, 혹은 지와 행의 병행을 특징으로 하는 성리학의 마음교육론은, 불가의 그것에 비교해서도, 미래 공교육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부응하는 특장을 지니고 있다.”(황금중, 2005)

: 11:32 pm: bluemosesErudition

성화는 사랑에 감화된 요란한 자기의지의 부인이다. 그런데 왜 이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전에 ‘왜’를 해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욕망의 정화를 다루기 때문이다. “대중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시기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가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욕망을 충족시킬만한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 대중은 분노한다.”(cf. Mansfield, 2007)

November 14, 2011: 2:40 pm: bluemosesErudition

1년 남짓, 창피할 만큼 고마운 사람들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 은송림, 2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