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무시하는 자는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Edmund Burke, 1729~1797)
“역사를 무시하는 자는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Edmund Burke, 1729~1797)
1. “베네딕트가 창시한 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중심이다. 그는 529년에 몬테 카지노에 수도원을 세우고 당시에 알려져 있던 ‘스승의 규칙 Regula Magister’을 토대로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만들었는데, 이 규칙은 다른 수도원에도 전범이 된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이후 프랑크 왕국(481~870)의 정복전쟁에서 새로 획득된 영토에 사는 사람들을 선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본래 목적이던 수도원이 세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사들은 왕국의 지원을 받아 새로 정복된 지역에 수도원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수도사들은 정치적인 일에 자연스럽게 가담하게 되며, 이렇게 해서 수도원은 교회의 기관이자 국가의 한 기관이라는, 서로 조화되기 어려워 보이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교회나 수도원이 국가의 한 기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세속적인 부를 추구하는 타락이 일어나고 이것이 쌓이면 개혁이 필요해진다. 개혁은 10세기 무렵, 아퀴테인의 빌헬름에게서 시작되었다. … 기성 교회는 민중경건운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십자군을 동원하는 한편 이론적인 대응도 준비했다. 도미니크 수도원은 이단운동에 빠진 사람들을 올바른 신앙인 제도권 교회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교단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후에 아퀴나스와 같은 탁월한 신학자를 길러내는 원천이 되었다. 도미니크 수도회 역시 부작용이 있었다. 도미니크 수도회는 교황에 대한 충성이 강했기 때문에 이단을 설득해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뿐만 아니라, 종교재판을 통해서 이단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단재판 전문가가 된 것이다. 도미니크 수도원이 민중각성운동에 대한 권력 차원의 이론적 대응이라면 프란체스고 수도원은 민중의 저변에 대한 응답이라 할 만하다. 이 수도원의 설립자 프란체스코의 빈자사랑이 상징하듯이, 그들은 카타리파와 왈도파처럼 가난한 평신도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이단 운동의 확산을 막아냈다. 이 수도원은 교황의 승인을 받아 공식 수도원이 되었다.”(94~97)
2. “10세기 이후 중세의 민중경건운동은 기성 교회에 의해 모두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 이에 대해 윌리엄은 도대체 왜 이러한 이단종파들이 생겨났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라고 하는 곳은, 돈 많은 성직자들이 가난한 자, 배고픈 자들에게 미덕을 가르쳐야 하는 참으로 말 많은 곳’이지만 기성 교회의 교리나 실천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이단적 교파들이 무식한 민중의 계층에서 …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땅에 지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져 ‘사도적 청빈’의 이상에 쏠리는 대중이 생긴다는 것이다.”(97)
3.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겼다. 당시 아비뇽은 나폴리 왕국에 속해 있었지만, 교황청은 이때부터 프랑스의 세력권 내에 놓이게 되었다. 로마 사람들은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었던 기간을 두고 ‘바빌론의 유수’라고 일컬었다. 교황청이 이렇게 옮겨가게 된 이유에는 프랑스 국왕의 위협이 결정적이었다. … 그(보나파키우스 8세)는 교황권 강화를 위해 힘썼으나 프랑스의 필립 4세와의 분쟁에 휘말렸다. 그 뒤를 이은 클레멘스 5세는 자연스럽게 아비뇽에 교황청을 자리 잡은 것이다. 교황이 프랑스 왕의 세력권 아래에 들어가 있는 동안 바이레른 공 루드비히 4세는 독일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962~1806)의 황제가 되었으며, 곧이어 그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와 제휴를 맺어 독일의 왕위를 공유하게 된다.”(28~29)
4. “유럽은 1315년부터 홍수가 시작되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악랄한 이단 심문관으로 등장하는 베르나르 기는 그의 연대기에서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양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온 땅을 깊은 흙탕 늪으로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비의 재앙은 유럽 북부의 광대한 지역, 아일랜드에서 독일 그리고 스칸디나비아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린 비는 유럽 전역의 많은 마을 주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숲을 개간하거나 저습지를 복토하여 일궈놓은 농지를 수렁으로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소출이 급락했다. 굶주림은 지난 세기의 인구 증가로 인해 더욱 심했다. 1316년 말경 농부들과 노동자들은 결국 거지로 전락했다. 이 빈민들은 병들어 죽은 가축이나 들판의 풀을 먹으며 연명했고 온갖 종류의 질병에 노출되었다. 그들은 무기력증에 걸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유럽의 공동체들은 차례로 절망에 빠지고 붕괴되었다. 1317년 또 다시 큰 비가 내려 축축한 여름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탄원하는 애달픈 예배를 올렸다. 기근은 종교적인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 청빈은 중세에 찾아온 이 모든 위기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주제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중세의 정치적 구도를 깨뜨릴 위력을 가진 폭발물이었다.”(116~119)
5. “이런 와중에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지아에서 소집되었고, [파리대학 교수를 지낸 아베로에스주의 철학자이자] 총회장이었던 체제나의 미켈레 Michael of Cesena는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한다. 그것은 ‘사용권, 이용권 usus facti’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는 소유가 아닌 사실상의 사용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을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수도사들은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교황 요한 22세가 이를 못 마땅해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1323년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Cum inter nonnulos’라는 회칙을 발표하며 프란체스코 회의 선언을 묵살해 버린다. 교황이 발표하는 회칙은 본문의 처음 두세 단어로써 제목을 삼는데 ‘몇몇 학자들이 … 하기 때문에’라고 번역되는 이 회칙은 그리스도의 청빈을 지지함으로써 교황권에 정면 도전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미 요한 22세에 의해 파문을 당하고 그에 대응하여 교황을 배교자로 비방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와 이단으로 몰리고 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손을 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었고, 이들은 교황파에 대립하는 황제파를 형성하게 된다.”(31)
6.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 말에 시작된다. … ‘중세의 가을’을 확실하게 강타했던 1347년의 페스트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던 것이다.”(26~30)
7.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세상 도처의 축소판은 수도원이요, 수도원의 축소판은 장서관이다. 장서관의 축소판은 책이 있는 구석방이다. 책이 있는 구석방은 … 컨텍스트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책이 있으므로 텍스트이기도 하다.”(41~42)
* “종교적 비참함은 현실적인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적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탄식이며, 무정한 세계의 심정이고, 또한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간난艱難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Marx, 1844[2011])
“하나님을 아는 약간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보다 값지다. … 하나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들은 거짓되고 과장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며,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얻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다.”(제임스 패커) 그렇다, 진실로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이다.”(찰스 스펄전)
*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사람
1. 몸소 행하려 하니 비통하다. “행복이란, 에 대한 정의 내리는 걸 참 뜬구름 같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제 아침 무심코, 행복이란, 에 대해 답을 했다. ‘정신이 거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거.’ 이걸 하면서 저기에 생각이 가 있는 불일치의 나날은 고단했다.”(꽃잎그림작가 백은하)
2. 운명이려니 했던 전례없는 업무의 일단은 ‘공손한 교만’에 기인한다. 십자군의 사명과 시선의 비대칭성은 기만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그것은 불화를 초래한다. 답답해하며 현실을 참아내는 듯한 인상에 주위 사람은 설자리를 잃고, 나는 자기의에 심취한다. “얄밉다.” 이윽고 두텁게 산재된 일은 일상을 불안케 하고, 맞닥뜨린 제약으로 인해 좌초된 자아의 열정은 급격히 소멸하며 애써 지켜왔던 믿음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평안한 인내’는 자취를 감춘다. “버겁다.”
3. 버거운 자에게 얄미운 시선은 억장이 무너지는 서러움을 안긴다. 제 자신이 애처로워 휘청인다. 업보라 해도 망연자실 다음 행보를 옮길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열패감에 질식하는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찌 하였는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언명을 준행하고자 한다면, 다음 구절에 기도의 본질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잠언 9:10)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령을 모욕하는 것이다.”(Packer, 2004[2010]: 73)
<프로이트와 종교>,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에 이어 ‘신학과 심리학’을 연계하는 권수영의 저서 <기독(목회)상담, 어떻게 다른가요?>
1. 기독(목회)상담, 무엇이 다른가 _ 심리학과 신학의 만남
2. 초기 상담, 어떻게 할 것인가 _ 공감과 성육신
3. 내담자, 어떻게 이해할까 _ 수치심과 하나님 형상
4.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_ 회심과 회개
5. 슈퍼비전 어떻게 할 것인가 _ 심리학과 신학의 통합적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