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10

February 28, 2010: 1:28 am: bluemosesErudition

하이데거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유를 형해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그것이 그의 과오이자 한계였다.

: 1:25 am: bluemosesErudition

주술적 신화와 도구적 이성 사이에서, 소통의 해방을 모색하다.

February 27, 2010: 1:36 pm: bluemosesErudition

“백지에 가사를 쓰고 거기에 맞춰 노래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그의 길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싱어송라이터란, 소리로서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하는 건데, 의도하고 가사를 쓰는 게 너무 위험해 보였다. 염두에 둔 것들에 맞춰야 하니까. 중반 정도가 지나고 나서, 시작과 상관없이 쓰기로 했다.” 내용과 형식을 오가며, 사회성과 서정성의 조합은 그렇게 Lucid Fall의 <레 미제라블>을 채웠다.

February 26, 2010: 1:33 pm: bluemosesErudition

1. “지난 30년 동안,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 우리는 여러 형태의 정치 사상에 있어서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새로운 물음들이 제기되고 새로운 해답들이 나왔다. 18세기와 19세기의 정치 사상가들이 알지 못했던 문제들이 갑자기 전면에나타났다. 현대 정치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두려운 양상은 아마도 한 새로운 세력, 즉 신화적 사고의 세력의 출현일 것이다. 신화적 사고가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우세함은 자못 명백하다. 단기간의 격렬한 투쟁이 있은 후 신화적 사고는 명백하고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같이 보였다. 어떻게 이 승리는 가능하였던가? 그토록 갑자기 우리의 정치적 지평선에 나타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 이전의 모든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은 듯이 보이는 이 새로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19쪽)

2. Ernst Cassirer(1874~1945)는 <국가와 신화> “제1부 신화란 무엇인가”에서 신화의 구조와 기능 등을 고찰하고, “제2부 정치학설사에서의 신화 반대의 투쟁”에서 ‘초기 그리스 철학’과 ‘중세 철학’을 경유하여 ’계몽주의 철학과 그 낭만주의 비판자들’을 일별한다. 그리고 문제의식이 집약된 “제3부 20세기의 신화”에서는  Ch.15 ‘준비: 칼라일’, Ch.16 ‘영웅숭배에서 인종숭배로(고비노)’, Ch.17 ‘헤겔’, Ch.18 ‘현대의 정치적 신화의 수법’ 순으로 파시즘의 사상적 편린을 검토 및 평가함으로써 그 신화적 본질을 파악한다.

3. 자신의 주의주장에 입각하여 파시즘을 ‘도구적 이성의 귀결’ 내지 ’반동적 모더니즘’으로 해명한 Theodor Adorno나 Mark Neocleous의 논설과 달리, Ernst Cassirer는 그것을 신화적 사고로 치부하여 정치사상적 비판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신화>는 - 미완성 유작이란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 담론환원적 접근방식을 취함에 따라 ‘영웅숭배’에서 ‘인종숭배’를 거쳐 ’국가숭배’에 이르는 신화의 파편들을 여러 정치사상에서 채집하는 것으로 그친다.

4. 정치사상에 입각한 신화의 심층적 검토는 실상 부질없는 짓이다. Neil Gregor는 <히틀러를 읽는 법(How to Read Adolf Hitler)>에서 이점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히틀러의 글에서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작가, 정치가, 철학자의 사상의 메아리를 힘들지 않게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메아리들은 언제나 공허하고 절반만 이해된 것”이다. 히틀러는 “팸플릿이나 신문, 강연, 대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지식”을 얻었고, 그것조차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만 읽었다.” 파시즘이란 신화는 사상의 잡동사니였던 것이다. 관건은 신화 그 자체의 분석이 아니었다.

5. 어설픈 신화의 실존은 파괴적이었다. 제3제국은 ‘합의된 전제’(illusio)로서 무의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사회적 행위는 그것에 토대하여 전개되었다. 신화의 권능은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다시 말해 ‘파시즘은 어떻게 득세하였는가?’ 기실 카시러의 연구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이 승리는 가능하였던가? 그토록 갑자기 우리의 정치적 지평선에 나타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 이전의 모든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은 듯이 보이는 이 새로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Ian Kershaw가 제기한 ‘Hitler Myth’는 하나의 대안적 논증일 것이다.

February 25, 2010: 10:44 pm: bluemosesErudition

중세에 만연했던 신플라톤주의적 세계관에 의하면 세상은 제1원리로부터 퇴화하여 형성되기에, 만물의 근원인 일자로부터 멀수록 존재는 불완전하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William Wordsworth(1770~1850)는 이러한 사상을 투영하여 자신의 1802년 작 The Rainbow에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라 표현하였다. 全文은 다음과 같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 12:10 am: bluemosesErudition

0. “지금 이 시점에 꼭 해야 할 사업입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한 미래사업이 정치 논리로 좌우돼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1.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자연법 상의 공리란 없다. 현실정치에서 미덕과 악덕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德’이 파멸을 낳고 ‘惡’이 유익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가에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과오, 즉 무능이다. 공공의 이익 - 이것을 규정하는 것은 ‘군주’이다 - 을 선포한 뒤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실행하라.

2. “마키아벨리는 자유로운 대중이 그 복리를 한 사람에게 완전히 맡기는데 있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를 밝히고 싶었던 것 같다.”(Spinoza) “이탈리아의 한 정치가는 이 일반적 곤궁과 증오와 무질서와 암흑의 감정 속에서, 냉철하고 신중하게 한 국가로의 통합에 의하여 이탈리아를 구출해 내어야 하겠다는 어쩔 수 없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상황을 관찰함으로써 형성된 한 사상의 발전을, 모든 상황에 적합한 따라서 어떤 상황에도 적합하지 않은 도덕 및 정치적 원리들의 제3자적 입장에서의 요약으로 취급하는 것은 가장 당치 않은 일이다.”(Hegel)

3. 제프리 삭스(Jeffery D. Sachs)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폴란드와 러시아, 슬로베니아, 몽골 등에서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자문을” 하였는데, 그 방침은 Shock Therapy이었다. “Sachs became renowned for implementing economic shock therapy throughout the developing world and in Eastern Europe.”

4. 한국은 이해가 도덕을 잠식하는 마키아벨리즘이 전형적으로 구현된 사회이다. 김대중의 IMF+α, 노무현의 한미FTA에 이어 이명박의 대운하는 ‘군주에 의해’ 공공의 이익으로 규정된 뒤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실행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우경화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동의와 지지에 의거한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즘으로 보는 한국 헌정사>를 일독해야겠다.

February 23, 2010: 7:02 pm: bluemosesErudition

서구의 철학이 연구방법을 위한 ‘인식론’이라면, 동양의 사상은 인격수양을 위한 ‘공부론’이다.

: 6:50 pm: bluemosesErudition

진단으로서의 사회학과 처방으로서의 교육학. 양자는 분리될 수 없기에 (교육)사회학Sociology of Education이나 교육(사회)학Education of Society도 아닌 - 교육과 사회, 그리고 교육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교육사회학적 접근인 - 교육사회학Educational Society of Educational Society(= ESES)을 지향한다. 이는 변형된 자아의 파악 너머 자아의 변혁을 추구하기 위함이며, 일상의 취향을 의문시하는 상대주의적 신경전이나 대중의 신분을 고착화하는 절대주의적 쟁탈전에 동참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February 22, 2010: 4:13 pm: bluemosesErudition

- 홀로 공부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의 차이, 영혼 탐구의 실마리가 될 듯 하다(’10. 2. 22).

- 그릇된 가설이었다. 전자가 내향성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시너지와 관련된 것이었다(’10. 2. 23)

February 21, 2010: 10:27 pm: bluemosesErudition

1. 열등과 교만 사이에서 진자운동하는 ‘自信’을 폐기하고, 제 여건에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自尊’으로 가는 길: 타인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2. 섬김은 공동체 구축에 앞서 자아를 변혁하는 영향력을 내재한다. 그것은 ‘영혼의 능력’인 덕(aretê)을 발현하는 자아 경계의 확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