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몬드>의 저자는 정치인 손학규의 자제라 한다.
1.
이정은6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버지였다. 이정은6의 아버지 이정호씨는 트럭을 운전하다 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다. 이정은6가 네 살 때였다. 이정은6는 “그 당시 나는 아버지가 결정한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도 있었고,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대신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2.
9살 때 티칭프로였던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이정은6는 12살 때 골프가 지루하게 느껴져 골프를 그만뒀다. 15살 때 이정은6는 누구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 티칭프로가 되면 순천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3.
이정은6의 골프 인생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고향 전남 순천의 연습장에서 훈련한 이정은은 특기생으로 진학할 성적 자체가 없어 순천 청암고에서 보통 학생으로 골프와 학업을 병행했다. 이정은6는 17살 때 서울에서 학업과 골프를 병행할 수 있는 골프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정은6가 만난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 이정은6는 도전을 택했고, 그것이 전환점이 됐다. 이정은6는 이후 전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도 가입해 ‘이정은6’로 불리게 됐다. 순천에 머물렀다면 지방의 한 이름 없는 티칭프로가 되었을 그가 도전과 변화를 통해 프로 선수로 발돋움했다.
4.
2018년 이정은6는 또 다른 갈림길에 직면한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편안한 한국에서 살 것이냐, 큰 무대지만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LPGA로 진출할 것이냐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이정은6는 “내가 내 인생에서 울퉁불퉁하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2019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거나 올해의 신인 선수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고향을 떠났고, KLPGA에 안주하지 않았기에 LPGA에서 영광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뚜렷한 목표를 갖고 다시 골프채를 쥐었기에 이정은은 정말 독하게 훈련하고 노력했다. 가장 일찍 연습장에 나가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성실파였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100㎏짜리 바벨을 들고 웨이트 훈련을 했다. … “그동안 참았던 라면을 나 자신에 대한 우승 선물로 주고 싶다”는 우승 소감에 현지 언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100만달러짜리 라면”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