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987년부터 교단에 섰다. 10년 동안 중ㆍ고등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997년부터 청주교육대학교에서 사회과교육, 다문화교육, 현장연구방법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교실수업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이래 수없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수업 실천을 개선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수업 비평이라는 새로운 연구 장르를 개척했다. 세계의 수업을 관찰하여 일상의 수업 실천이 한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비교 연구하는 수업 비평서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으나 아직 숙제로 남겨 두고 있다.

7. 돌아보니 나는 주로 수업 현상을 중심으로 우리 교육 현장을 연구해 왔다. 교실수업이 공교육의 최전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전선에서 교사와 학생이 행복하게 만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교사와 학생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그 일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연구를 했던 것 같다.

9~10. 우리 삶은 왜 점점 더 팍팍해져 갈까? 왜 노력은 하는데 전망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갈까?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내놓는 것은 내 학문적 능력의 범위 밖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배경을 지닌 교육학자로서 나는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이룩한 눈부신 성취가 오늘날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흔히 학자들은 ‘성공의 위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루어 낸 성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이 어마어마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행동 방식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공히 적용된다. 보수는 박정희식 성장 모델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진보는 전투적 민주화운동이 가져온 성공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에 대한 집착이 달라진 시대에 대한 유연한 적응과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 성장 지상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 질서나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획이 지극히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11. 우리 교육 현장의 일상적 실천은 이미 조종을 울리고 있는 석양의 풍경에 병적으로 고착되어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생각 행위 방식을 요구한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교육 행태, 정치 행태, 경제 행태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이런 현실은 다시 우리에게 교육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교육은 경험의 끊임없는 성장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구성원들을 해방시킨다. 좋은 교육은 낡은 습속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미래를 진취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해준다. 혹자는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사회 구조의 개혁 없이는 교육의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일정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교육은 스스로 사회를 개혁하고 혁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교육이 지닌 이런 힘을 올바로 인지하였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전혀 없었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선각자들은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여명을 기약하지 않았던가?

12~13. 영국 출신의 기자 다니엘 튜더는 2012년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로 되어 있다. 독자들은 제목만으로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간파할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330~331. 문제가 진부해졌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나 힘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것은 기득권의 저항 때문일 수도 있고, 개혁 논자들의 비현실적인 주장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구조화된 문제의 심각성이 개혁을 실현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344~345. 이 책을 한참 집필하고 있던 2014년 10월경부터 나는 원인 모를 통증으로 고생을 시작했다. 인생 오십 줄을 넘어 처음으로 경험한 몸의 이상으로 나는 적잖이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당했다. 병의 원인을 찾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고 최종적으로 자율신경계의 시스템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 약 먹고 스트레스 관리를 하면 낫는 병이다. 더 심각한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원인 모를 통증 속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엄청난 공포를 체험했다. 한 인간의 나약함을 절실히 체감케 하는 기간이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병으로 인한 고통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실존적 위기가 아닌가? 그래서 고통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배웠다. 동시에 한 개체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서 유지되는가도 깊이 자각할 수 있었다. 감수성 있는 마음으로 보면 생존 자체가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우주 속을 유영하는 일이다.

345~346. 내가 학자로 성장하는 동안에 수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인연을 어찌 여기에 다 표현하겠는가? 특히 학부 지도 교수님이셨던 손봉호 선생님과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이셨던 조영달 선생님께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다. 손봉호 선생님을 통해서 나는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학자가 어떤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사회 참여와 더불어 평생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오신 선생님을 반쯤이라도 따라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조영달 선생님은 내가 박사과정 수료 후 길을 잃었을 때 교육 현장에 대한 내 문제의식을 학문적 글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교육 현장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생생하게 연구하는 방법을 조영달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더욱이 교직 생활 30년 가깝도록 변변한 제자 하나 키워 내지 못하는 나에게 조영달 선생님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제자들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스승상을 끊임없이 보여 주신다.

347~348. 수업과 학교 혁신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가슴 뜨거운 현장의 많은 실천가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수업, 학교, 교육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 주는 도반이자 스승들이다. 좋은교사모임의 정병오 선생님, 수업코칭연구소의 김태현 선생님, 협동학습연구회의 김현섭 선생님, 교컴의 함영기 선생님, 참여와소통모임의 이범희 선생님, 스쿨디자인21의 서길원 선생님, 성미산학교 박복선 선생님, 그리고 새로운 학부모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윤지희 선생님은 한국 교육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직접적 연구 관심사인 수업 비평에 대한 지속적 연구와 실천을 하는 다온의 윤양수 선생님과 동료들, 경기도중등수업비평연구회의 윤갑희 교장 선생님과 회원들도 나의 연구와 실천과 관련하여 좋은 파트너십을 맺어 온 소중한 인연들이다. (중략) 아울러 최근 인연을 맺게 된 거꾸로교실과 관련하여 남다른 직관과 추진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정찬필 피디님과 미래교실네트워크의 모든 선생님과도 깊은 우정을 계속 나누고 싶다.

_ 이혁규, <한국의 교육 생태계>, 교육공동체 벗,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