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가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명료하고 논리적이고 분명한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일 겁니다. 정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전재한다. 1996년, 그러나까 그가 49세에 발표한 시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 한계령쯤을 넘다가 /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오오, 눈부신 고립 /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