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홍성욱] 자연의 법칙이라는 개념의 등장과 부상을 분석한 사람이 에드가 질셀(Edgar Zilsel)이라는 사회학자였습니다. 에드가 질셀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전통에서 ‘입법자로서의 신(God as a lawgiver)’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즉, ‘법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려보낸 신’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여기서 신이 만든 법은 인간이 지키는 법이지, 자연에서의 죽은 생명체, 돌이나 지구와 같은 자연물이 지키는 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법자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이 확대되고 또 16~17세기에 전제군주제가 확립되면서, 나라 전체에 통용되는 유일한 법이라는 개념과 결합해 자연에도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최초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4~25. [홍성욱] 멘델의 법칙은, 형질이 다른 완두콩이 2대에서 3:1의 비율로 나타난다고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거나 관찰을 해보면 절대로 3:1로 나타나지 않아요. 2.8:1이라든지, 3.1:1, 3.2:1까지도 얼마든지 나타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멘델의 법칙을 3:1이라고 알고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보편적이고 단순한 멘델의 법칙이 자연에 존재하지만 복잡한 자연 현상은 이 법칙의 예외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복잡한 생명체가 매우 다양한 유전의 양상을 보이는데, 멘델의 법칙은 이런 복잡한 유전현상의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법칙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과학자들이 법칙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복잡한 자연 현상에서 아주 추상화되고 이상화된 요소를 뽑아내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었을 때,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창조해 냈을 때, 우리가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나온다는 것이지, 자연에 그 법칙이 실재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마치 돌을 줍듯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7. [이강영] 사실은 정말로 존재하는 자연법칙이 단순히 뭔가에 비례하도록 되어있을 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거나, 실험실에서 관찰할 때는 특정한 조건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온도는 주로 상온에서라든가, 실험실에서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걸어줄 때는 실험 가능한 정도의 크기로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 법칙이, 정말로 그 안에 들어 있는 법칙은 굉장히 복잡한 함수라 할지라도 우리는 제한된 범위에서 일부만을 관찰하게 되고, 많은 경우 우리가 얻은 데이터는 근사적 직선으로 표현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 ~에 비례한다’는 식으로 법칙을 만들게 됩니다.

30. [이강영] 스티븐 와인버그는 “나와 법칙의 관계는 나와 의자와의 관계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다 의자에 앉아 계시죠? 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알죠? 이렇게 바꿔 말해보겠습니다. 의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될까요? 뒤로 넘어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법칙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그 법칙에 의해서 우리가 예언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겁니다. 우리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법칙에 따라서 우리가 그 현상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곧바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얼마나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존재한다고 할 때와 똑같은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똑같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물리법칙이 자연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31~32. [홍성욱] 자연에서 우리가 쇠공과 깃털을 떨어뜨렸을 때 같이 떨어지나요? 안 그렇습니다. 자연에서는 쇠공이 빨리 떨어집니다. 자연이라는 것이 재정의 됐다는 거죠. 갈릴레오에 의해서요.갈릴레오의 법칙을 만족하는 것이 자연이라고, 과학자들이 17세기부터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수학적인 공간을 진짜 자연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게 물리학이다, 그게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학문이라고 말이죠.

33. [홍성욱] 의자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의자가 없으면 제가 앉아있지 못해요. 넘어지죠. 근데 법칙이 없다고 자연이 붕괴되느냐? (중략) 뉴턴의 법칙이 있기 전에 태양계가 붕괴됐을까요? 아니죠. 자연은 존재합니다. 자연은 존재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인간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게 과학의 역할이죠.

44. [홍성욱] 뉴턴의 중력은 많은 경우에 존재한다고 믿어왔고 우리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우지만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현상(epiphenomenon)’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휘어진 시공간에서 물체가 운동할 때, 두 물체 사이의 어떤 관계를 우리가 중력이라고 부른다는 식으로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실재성이 많이 희석됐습니다.”

46. [홍성욱] 자연은 원래 복잡해서 딱 3:1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는데 그것을 우리는 3:1이 나온다고 이해하자, 그것을 우리가 법칙이라고 부르자는 거죠. 멘델이 그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낸 것이죠. 그 복잡한 자연 현상에서 간단한 패턴, 간단한 수학적 관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과학자인 것이고요.

_ 홍성욱 외, <과학은 논쟁이다>, 반니,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