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세기 이래 문학의 주제는 소외와 그것의 변주이다.” “근대 소설의 주제는 분명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이다. … 이처럼 이미 주제가 하나로 정해져 버린 이후 소설의 근대성은 주제가 아닌 묘사 기법, 서사양식을 통해서 담보된다. 그런 까닭에 Alan Spiegel(1976[2005])이 <<소설과 카메라의 눈>>에서 주제화하는 의문, “19세기 소설, 그 중에서도 후반기 소설에는 왜 보는 것이나 순수한 시각적 정보가 그렇게 많고, 그 이전 소설에서는 적은가”는 오히려 우문이다.”

2. “우리가 플로베르를 읽었던 이유는 <<정신현상학>>이 가진 독특한 서술양식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철학적 저작들의 주어는 진리를 탐구해 나가는 회의적 정신이거나, 이미 진리를 성취한 보편적 정신이었다. 그런데 <<정신현상학>>에는 이 두 주어가 모두 등장하여 나선螺線을 형성하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는 분명 헤겔의 의도적인 서술의 결과이겠으며, 그로써 헤겔은 근대의 철학적 사유 내용에 걸맞는 철학적 서사형식을 제시했다고 하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다.”

3. ”근대의 철학자 헤겔이 진리를 보여주는 방법은 ‘상세한 서술’이다. 그것은 카메라의 눈으로 대상을 보여주는 것만도 아니요, 대상을 도외시한 채 내면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 양자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양자의 통일을 보여주는 총체성 추구와 보여주기의 방법이다. … 1807년에 출간된 <<정신현상학>>의 표면상의 주어는 무지하고 소박한 실체적 의식이다. 이 의식은 총체적 진리를 알지 못하고 당면한 대상에 집착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인식을 시도한다. 그런데 <<정신현상학>>에는 숨어있는 관찰자가 있다. 총체적 진리를 알고 있는 그는 소박한 의식이 편력하는 ‘절망과 회의의 길’을 관조한다. 이 둘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하나가 숨고 다른 하나가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아무리 소박한 의식이 무지하다해도 그 의식은 스스로를 형성하는 정신으로서 새로운 형태를 향하여 성숙해가며, 종국에는 관찰자로서의 정신이 이미 이르렀던 지점, 즉 절대지에 도달한다.”

4. ”<<정신현상학>>은 근대 소설의 한계를 표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예술의 표상 주장에 대한 철학의 극복도 표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열된 소외의 세계인 근대 세계의 극복 및 사유와 존재의 통일을 적어도 정신의 권역에서는 성취한다. 우리는 <<정신현상학>>을 읽음으로써 철학적 위안을 얻으나 소설의 독자는 여전히 카메라의 눈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5. “‘내러티브”가 대세라는데… 잡담들 뿐이다. <<소설과 카메라의 눈>>을 먼저 읽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