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이 수정란의 형태로 내 안에 착상된 셈이다. (중략)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결국 ‘나’여야 했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떠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이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세 번을 다시 썼다…… 작가는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한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_ 정유정, <종의 기원>, “작가의 말”, 379~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