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궁핍한 시대의 홀로 있는 지성처럼 보였고, 따라서 학교를 떠날 때까지 선생의 다른 수업들을 좇아 들었다. 당시 학생들은 대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이나 사회주의 관련 일본 책들의 조악한 번역서를 집중해서 읽었을 뿐, 나머지 책들은 쉽게 버려지던 시절이었다. ‘돌층계 위에서 /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기형도, ‘대학시절’) 선생의 수업은 플라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를 요구했다. 어느 날 수업 이외에는 원체 말이 없던 선생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역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합니까?” “허허, 그걸 나에게 물으려고 왔습니까?” 선생은 연구실 문을 두드린 나에게 의자를 권했다. 선생은 대답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