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문과대 담장 너머 명륜동 골목길 안쪽의 한옥집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대문에는 안에서 잠그는 빗장뿐이었다. 누군가 한 명은 늘 안에 있어야만 하는 그런 집이었다. 귀가가 늦어지면 아예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잤다. 과방이나 좀 더 개방적인 친구 하숙집이나. 나는 숫기 같은 건 내게 처음부터 없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일찍 들어가는 날이면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라디오를 틀어 놓은 채 책을 읽었다. [말테의 수기]도 그때 읽은 책 중 하나다. 라디오에서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이별이란 없는 거야’ 같은 노래들이 나왔다. 그러다 밤이 깊으면 누군가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곤 했다. 열어 보면 직장에 다니는 주인집 딸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문을 열어 주면 곧 주인집 아줌마가 마당에서 딸을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이런 문장을 읽었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모든 게 지금까지보다 더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과거에는 항상 끝났던 곳에 이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옛날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이 생겼다. 이제 모든 게 그곳으로 간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모르겠다.” (중략) “‘시체’라는 보들레르의 믿을 수 없는 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나는 이제야 그 시를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몰라. 마지막 연을 빼고는 그의 표현이 옳았어. 그런 일을 당했으니 그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 끔찍한 것 속에서, 겉보기에 혐오스럽게만 보이는 것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통용되는 존재성을 보는 게 보들레르에게 주어진 과제였어. 선택이나 거부는 없지. 너는 플로베르가 [성 쥘리엥 수도사의 전설]을 쓴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니? 누군가가 밤에 나환자와 함께 자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으로 그를 포근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아닐지가 나에게는 몹시 중요하게 여겨져.”

_ 김연수, “말테의 수기”, 네이버캐스트, 2010. 12. 06.

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무언가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28세가 되었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이켜보자.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화가, 1455~1525] 카르파치오에 관한 작은 소품을 한 편 썼으나 졸작이고, 「결혼 생활」이란 드라마도 썼는데 무언가 잘못된 것을 이중적 수법으로 입증해 보이려고 한 시도였다. 그리고 시도 썼다.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의 길, 뜻밖의 만남,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년 시절에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 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기분을 언짢게 해드린 부모님(다른 사람이라면 기뻐했을 텐데), 심각하고 커다란 변화로 인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질병, 조용하고도 한적한 방에서 보낸 나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곳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소리 내며 모든 별들과 더불어 흩날려 간 여행의 밤들!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같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는 수많은 밤들, 진통하는 임산부의 외침, 가벼운 흰옷을 입고 잠을 자는 동안 자궁이 닫혀져 가는 임산부들에 대한 추억도 있어야 한다. 또 임종하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봐야 하고, 창문이 열리고 간헐적으로 외부의 소음이 들려오는 방에서 시체 옆에도 앉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내 시는 모두 그와는 다르게 생겨났다. 그러니 그것은 시가 아니다.

_ 1910년, 그러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35세에 출간한 <말테의 수기> 26~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