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슬픔은 그의 얼굴을 다 차지했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로 차오르던 슬픔이
어느새 얼굴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었다.
혈관과 신경망처럼 몸 구석구석에 정교하게 퍼져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으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뱉은 모든 발음이 울음으로 한꺼번에 뭉개질 시간이
팔자걸음처럼 한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줌밖에 안되는 웃음을 당장 패대기칠 수도 있었지만
슬픔은 그가 더 호탕하게 웃도록 내버려두었다.
조잘대는 주둥이 깊숙이 주먹 같은 울음을 처박을 수도 있었지만
침이 즐겁게 튀는 말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웃음과 수다에 맞추어 목과 이마의 핏줄이 굵어질 때마다
슬픔이 지나가는 자리가 점점 선명해지는 게 보였다.
웃다가 조금이라도 표정이 일그러지면
아무리 환하게 웃어도 좀처럼 다시 펴지지 않았고
웃음이 고음으로 가다가 조금이라도 떨리면
기다렸다는 듯 즉시 울음소리로 바뀌려 하였다.
그다지 우습지 않은 농담에도
슬픔이 들킬까봐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었다.
웃음과 수다가 갑자기 그칠까봐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_ 김기택, “슬픈 얼굴”,《세계의 문학》200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