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계발에 왜 ‘쓰기’를 강조할까. 서울대 심리학과 박주용 교수는 철학자 베이컨의 말을 인용해 “독서는 완전한(full)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ready) 사람을, 쓰기는 정밀한(exact) 사람을 만든다”며 “독서와 토론과 쓰기는 창의적 사고를 위해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말했다. “글을 써봐야 생각이 정리되고 무엇보다 ‘내가 어디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말로는 안다고 하는 내용도 글로 옮기려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극명하게 나타나죠. 그제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 즉 창의성이 발현하는 것입니다.”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의 일원인 박 교수는 “대학 교육은 토론과 글쓰기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하에 본인 강의를 그렇게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매주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 토론할 주제를 제시한다. 예컨대 ‘대입 시험을 지능검사 시험으로 대체하면 어떨까’라는 주제와 함께 ‘사이언스’ 같은 잡지 기사 스크랩 등 관련 읽을거리를 준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며칠씩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A4용지 한 장 정도로 답안을 작성해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읽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모든 학생이 각각 임의로 배정된 다른 학생 서너 명의 글에 대해 평가를 남긴다. 박 교수는 “매주 쓰기 과제가 있으니 각 학생은 한 학기에 12~13장 분량의 글을 쓰는 셈”이라며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만 받아온 우리 학생들에게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 당일에는 학생들이 3~4명 규모의 소그룹별로 토론을 벌인다. “타고난 지능에 의한 위계질서를 조장할 것”이라거나 “이미 우리 대학 제도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 같은 갑론을박이 오간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올린 글 중에 좋은 것 몇 가지를 수업 시간에 소개할 뿐이다. 이따금 학생 사이를 오가며 어떤 토론이 오가는지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개입은 최소한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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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에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말한다.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은 실로 허약하며 쓸모 없고, 교육적 실패의 결과물에 불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의 외장일 뿐이다.” 하여 그가 인용한 고대 중국의 격언은 울림이 크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