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2004) “가재미” _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가재미’는 가자미의 경상 방언이다. “가자미 눈은 원래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한쪽으로 몰린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게 늙는 것일 수 있겠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증거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