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핵심은 쓰기보다는 읽기에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를 놓고 인간적인 읽기를 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죠. 그런데 맥락이라는 것이 큰 범위이고, 어떻게 보면 책 한 권 전체, 저자의 세계, 시대 전체가 될 수 있어요. 인간의 읽기는 그걸 다 동원하는 거죠. 기계는 그게 잘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일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번역의 결과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필연”이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이에 인간의 상상을 집어넣지 않고는 번역을 할 수 없다. 어떤 텍스트의 독자가 되는 순간, 빈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번역이 인간적인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번역을 업으로 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번역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발터 벤야민 이론을 토대로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쓴 내용을 이렇게 부연했다.

“보통 A라는 언어, 고정된 실체를 B라는 언어로 옮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역이냐, 의역이냐’, ‘원작에 충실할 것이냐,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충실할 것이냐’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얘기는 A라는 언어가 있을 때 이것을 완결된 실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고정된 상태로 텍스트 안에 담겨있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지·인식과 상호작용하면서 해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결국 번역은 고정된 덩어리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두 언어 안에서 미완된 부분, 제3의 어떤 부분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책에서 “우리의 번역 작업은 불완전한 양쪽 언어에서 어떤 완전한 언어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현재 우리의 언어는 성기고, 번역의 반은 상상인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