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있으면 쉽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시가 암호처럼 보이면, 암호를 풀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시는 더 이상 읽히지 않게 될 거 같아요. 사실은 아무것도 완전히 해결된 게 없는데도, 암호가 풀려버린 기분이 들면 사고가 거기서 멈춰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쉽게 읽히고, 쉽게 들키지 않는 시를 쓰고 싶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를 찾는 그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거인의 어깨 위가 아닌 땅바닥에서 이뤄진다. 열악한 조망에 답답할 순 있겠지만 진짜 흙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시인은 거기서 흙탑을 쌓아 올리지 않는다. 시는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평생 나를 부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제가 갖고 싶은 ‘시적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