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황인찬) _
친척의 별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때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기하학에 대해, 마음이 죽는 일에 대해, 건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는 지난 여름 그와 보낸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트려야 할까?”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늦은 오후에 죽어 가는 새의 체온을 높이려 애썼을 때,
창을 열어 두고 외출한 탓에 침대가 온통 젖어 어두운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었을 때,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트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