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문제
“문제는 오히려 거기에 있습니다. 프루동은 경제적 계급 대립을 해소하면, 그리고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국가는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그 자체가 자립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사고도 계승했습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을 잡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와 계급 사회를 지양한다는 블랑키의 전략을 승인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즉 그가 국가권력 탈취를 지양했던 것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바꾸려고 한다면 국가의 힘이 필요하고, 국가에 의해 자본주의 경제와 계급 사회를 지양하면 국가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마르크스의 결함은 국가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립성을 보지 않은 아나키즘에 있는 것입니다(25). …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매듭을 벗어나는 방법입니다(51).”
2. 국가의 기원과 자립성
“미개사회=공동체가 국가로 전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안에서의 호수적 교환(친족구조)이 아니며 전쟁도 아닙니다. 먼저 바깥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조건 및 수렵과 채집이 가능한 자연조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58). … 실제 생산력이 오르고 잉여생산이 생겼기 때문에 국가가 형성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국가에 의해 관개에 기초한 집단적 농업 그리고 장시간 노동의 강제가 있고, 그 결과 생산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59). … 국가의 성립을 공동체나 사회에서 보는 견해는 사실상 국가를 공동체나 사회로 환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자에서도 지배적입니다. 예를 들어 엥겔스는 국가를 계급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지배를 하기 위한 기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국가가 공동체나 사회 속에서 생겨난다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를 그 내부에서 폐기할 수 있다는 사고로 인도됩니다. 즉 경제적인 계급을 폐기한다면 국가는 소멸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바깥 국가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고 국가의 자립성은 그야말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63~64). … 정리해보면 세계사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적 제국이 먼저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성립하고, 그 바깥(아주변)에서는 중핵 문명이나 제도를 받아들여가면서도 중심부의 집권적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고전고대적인 도시국가와 제국, 그 아주변에 봉건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지않아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이 상비군과 관료기구를 갖춘 절대주의 국가인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아시아적 국가가 이미 이룬 수준을 따라잡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75~76).”
3. 보편종교와 세계제국
“고대국가에서 종교는 알튀세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야말로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신에게 기도하더라도 국가는 전쟁에 패하며, 패하면 신도 패하는 것입니다. 신의 힘은 국가의 힘에 비례합니다. 이처럼 종교의 보편화는 국가의 보편화 즉 세계제국의 형성에 수반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니체는 ‘세계제국으로의 진행은 항상 또 세계신으로의 진행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도 일신교의 출현을 세계제국이 다수의 부족이나 민족의 신들을 넘어서는 [유일]신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즉 보편종교는 현실적으로 세계제국의 지배수단이 되고, 또 그 영토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것입니다(102). … 그런데 보편종교는 특별히 초월적인 인격신을 불가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격신을 부정하고 무의 장소를 강조한] 불교도 보편종교입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시사적인 것은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입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일반적 등가형태(화폐형태)이지 그곳에 위치하는 사물이 아닙니다. 금은 금이기 때문에 화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등가형태라는 장소에 놓이기 때문에 화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이 놓인 장소입니다(106~107).”
4. 화폐경제와 절대왕정
“서유럽에서 이런 제국의 분해가 명료하게 되는 것은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에서 입니다(164) … 그것은 근본적으로 화폐경제가 침투한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농노가 부역이나 연공을 돈으로 내게 될 경우, 영주-농노라는 봉건적 관계는 지주-소작인이라는 관계로 변형됩니다. 화폐경제의 침투는 이처럼 실질적으로 봉건적(경제외적) 강제를 무화시킵니다. 다른 한편 그와 같은 봉건제후를 억압한 왕은 영주들이 받아온 봉건지대를 독점하고 그것을 국가에 대한 조세로 변형시킵니다. 이와 같은 주권국가가 각지에서 생겨나게 될 때 서유럽의 세계제국은 해체되었다고 해도 좋습니다(165). 마르크스는 상품교환이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78).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교환이 국가의 보호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품교환은 상호계약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이행을 강요하는 힘은 국가에 있습니다(82). 앞서 서술한 것처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는 생산물 교환보다도 약탈 쪽이 선행합니다. 때문에 상품교환이 성립하는 것은 약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 한합니다(78). 교환이 성립하는 것은 약탈이 단념되는 장소에서 뿐입니다(82). 도시가 자립하고 상업이 발전한 것은 문명의 주변에 있으며 집권적인 국가를 가지지 않았던 서유럽의 봉건제에서 입니다(96). … 도시의 자립이란 국가나 교회의 권력과는 이질적인 힘이 자립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공동체나 국가를 넘어서서 통용되는 화폐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봉건제는 붕괴합니다. 그 결과 생긴 것이 절대주의 왕권국가 입니다. 왕은 [봉건제 당시에] 동격으로 나란히 존재했던 다수의 봉건적 제후를 제압하고 집권적인 체제를 구축했는데, 그때 도시의 부르주아와 결탁하여 봉건적 특권들을 폐기했습니다. 이때야 비로소 상품교환=화폐경제의 원리가 국가에 의해 승인된 것입니다(97).”
5. 사회계약과 민족국가
“그런데 국가는 정부와는 다른 것이고, 국민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124). 사회계약론에 의한 국가론은 국가를 내부에서 보는 것이며 국가와 정부를 혼동하는 것입니다(125). 예를 들어 혁명은 종래의 국가기구를 폐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바깥으로부터의 군사적 간섭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혁명의 방위를 위해 종래의 군-관료기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종래의 국가기구가 보존되고 재강화되게 됩니다. 국가를 그 내부만으로 보는 사고는 국가를 지양하기는커녕 오히려 국가를 강화시킬 뿐입니다(134). 마르크스가 생각하기에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들]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거기에 근대국가를 특징짓는 보통선거에 의한 대표제(의회)의 특질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계급들이 자신들의 대표에 등을 돌리고 보나파르트에게서 그들의 대표자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135). 이리하여 1848년 혁명의 시점에서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루이 보나파르트가 서로 대립하는 모든 계급-당파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136).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모든 계급에 대해 시원스럽게 증여함으로써 권위를 얻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나파르트는 모든 계급에 대해 가부장적인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계급에게서 빼앗아오지 않고는 어느 계급에도 베풀 수 없다.’ 보나파르트는 약탈한 것을 재분배하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이 증여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모든 계급에게 증여하는 초월자, 즉 황제로서 표상되었습니다(137). [즉,] 각 계층의 요구를 각각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면서 프랑스를 네이션=스테이트로서 통합했습니다(189). 그러나 이 과정은 국가기구에 의한 약탈-재분배라는 메커니즘이 증여-답례라는 호수의 표상 하에서 기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137). [이처럼] 네이션이란 상품경교환경제에 의해 해체되어 있던 공동체의 ‘[공상이 아닌]상상적’ 회복에 다름 아닙니다(171).”
6. 어소시에이션이즘과 세계공화국
“어소시에이션이즘은 상품교환 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자유의 호수성(상호성)’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즉 칸트적으로 말하면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칸트가 이와 같은 생각을 보편종교 ‘비판’을 통해 얻었다는 것입니다(183~184). [물론,] 칸트는 종교를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가 도덕적 법칙(자유의 상호성)을 개시하는 한에서 입니다. 그는 그와 같은 종교를 역사적인 종교에 대하여 순수이성종교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에 기초하여 ‘세계시민적인 도덕적 공동체’가 실현된다면, 역사적인 종교 제도 또는 성직자 제도는 폐기될 것이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언급한] ‘신의 나라’가 실현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칸트는 이런 세계시민적인 도덕적 공동체는 정치적-경제적 기반이 밑바탕에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그것을 매우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칸트가 말하는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다루라’는 도덕법칙은 자본주의에서는 실현불가능합니다. 화폐와 상품(자본과 임노동)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 그것에 놓인 개인은 부득이하게 타자를 수단으로만 다루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에 의한 통제나 부의 재분배에 의해 자본주의가 야기한 계급적 격차를 해소하려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계급격차를 야기하는 시스템 그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185). 그것은 … 애초에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시스템을 실현하는 것입니다(186). 그 점에서 프루동이 사회주의자가 일반적으로 부정한 경쟁을 긍정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191). 프루동은 사유를 반대함과 동시에 많은 사회주의자가 주창하는 공유(국유)도 반대했습니다. 그가 사유와 공유라는 안티노미를 넘어서, 그 어느 쪽도 아닌 소유형태로서 발견한 것이 [자유의] 호수성(상호성)입니다(192). [’독일의 프루동’인 포이어바흐와 마찬가지로] 청년 헤겔파 중 한명인 마르크스도 사회주의에 관하여 처음부터 프루동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는 전 생애에 걸쳐 바뀌지 않았습니다. 공산당 선언에서도 그는 공산주의는 ‘자유로운 어소시에이션’의 실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로 프루동파에 의해 이루어진 파리코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연합한 협동조합조직 단체들을 조정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단체들의 컨트롤하에 두어 자본제 생산의 숙명인 부단한 무정부 상태와 주변적인 변동을 끝내게 한다면, 여러분 그것은 공산주의’ 가능한 공산주의가 아니겠습니까?(194) 마르크스는 국가에 의해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어소시에이션이 국가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96). 그러나 그것에 의해 국가가 지양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197). 왜 국가를 그 내부에서 지양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국가가 그 외부와 관계함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입니다(199).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은 … 무시되어 왔던 칸트의 ‘세계공화국’이라는 이념입니다. 이것은 국가들이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입니다(203).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구성적 이념이 아닌 규제적 이념에 의거]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하는 것입니다. … 각국에서 이와 같이 주권의 방기가 이루어지는 것 외에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225).”
7. 추기
가라타니 고진은 시종일관 자본=네이션=국가를 보로메오의 매듭이라 목청만 높일 뿐, 그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지 <세계공화국으로>에서도 논증하지 않고 있다. 또한 다소 김새는 결말이 ‘어떠한 방식으로 묶여있는지도 모르는 매듭의 결박을, 어떻게 지구적 차원에서 끊어내야할지’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에 대한 노학자의 부단한 이동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