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실부모한 탓에 가장으로서 어려운 삶을 지탱해나가야 했던 류승완 감독에게 영화는 꿈이었다. 현실이 목을 죌수록 어두운 동시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보던 류 감독은 구운 오징어 냄새, 사람들의 음침한 표정 속에서 희열을 느꼈다. “특별한 재능이나 영리함이 있었다기보다는 매 순간 가졌던 절박함이 무기였다”는 그는 여러 차례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도전장을 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도 떨어졌다. 주변에서는 포기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술친구 봉준호 감독이 “제빵사나 하자”며 위로를 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 후 그냥 직진만 해왔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고, 영화아카데미도 합격했다. 다른 일을 한다는 상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했지만 이미 발을 내디딘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비참했고, 실제로 포기하려 했지만, 박찬욱 감독이 건넨 위로의 말 덕택에 영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 그렇게 호기롭게 말했던 박찬욱 감독의 데뷔 시절도 영 신통치 않았다. 그도 영화감독이 되고자 악전고투했다. 영화사를 다니며 보도자료를 쓰고, 영어 자막을 번역했다.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틀어달라며 영업도 했다. “<현기증>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된 영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닥치는 대로 글을 쓰고, 방송도 하며 겨우겨우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세월은 그렇게 자꾸 흘러 아이는 자랐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한 일을 할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