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수업 조교를 할 때였습니다. 학생들에게서 문자가 오곤 했습니다. 3회 이상 결석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과제를 늦게 냈는데 불이익이 있습니까. 저는 전체 문자를 날립니다. 우리가 태어난 거 자체가 불이익입니다. 공지사항에 다 나와 있습니다, 라고요. 그럼 어떻게 살지요? 본전만 뽑자, 이것이 제 좌우명입니다. 오늘은 제329회 연금 복권이 발표되는 날입니다. 2000원을 주고 두 장을 샀는데 2000원이 당첨되었습니다. 본전을 뽑았습니다. 세상과 제가 잠시 균형이 맞았습니다. 본전 뽑는 게 살면서 제일 어렵습니다. 일 등 당첨되는 자보다 본전을 뽑는 자가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이따금 혼자 되뇝니다. 불행에서 본전만 뽑자. 너무 아프면 안 돼. 나쁜 기억에서는 본전만 뽑는 거야. 너무 기억하진 마. 사랑에서 본전만 뽑자. 사랑한 만큼만 아프면 이제 그만 됐다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생선 뼈 바르듯이 시를 읽습니다. 제 시가 읽힐 때도 생선 뼈 발리는 기분입니다. 시는 삶이야, 라는 말은 이상합니다. 시는, 바나나가 삶인 만큼만 삶이고, 선풍기가 삶인 만큼만 삶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놈은 늘 누워 있는데 배가 고파서 조금 화나 있습니다. 놈은 뭔가 잘못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놈이 별 뜻 없이 이를 악, 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난데없이 가슴이 찢어질 리 없습니다. 별 이유 없이 시를 씁니다. 시를 쓰는 순간만 아프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 너무 지루합니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일기를 읽어주시는 블로그 이웃들에게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시는 모든 친구들에게도요. 그리고 피자의 조상 에트루리아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문보영, 2017.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