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박사 과정에 있는 후배들의 논문을 가끔 볼 때가 있다. 정말 미안하지만, 서베이 논문 이상은 아닌 경우가 많다. 간략한 테제 위에 세우든지 아니면 티끌 모아 태산 전략이든지 공부를 시작할 때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다 필요없는 것이라고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미 남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독자적] 공부를 통해서 찾아내거나 깨달은 것만이 비로소 자신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출발을 해야 한 발이라도 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게 두렵기는 하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야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로 뭐였는지를 알게 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그것은 남들이 이미 한 것인데, 그걸 쓸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은 가혹한 질문이기는 한데, 이걸 받아들여야 비로소 독립한 한 명의 박사가 되거나 연구자가 된다. 그게 안되면 평생 ‘시다바리’다(우석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