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간다는 것은/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나이」 전문)

고향 마을에 들어 내가 뛰어다니던 논두렁을 바라보니 논두렁 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사내의 몸에서 나온 소년이 논두렁을 따라 달려나갔다 뛰어가던 소년이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논두렁 멀리 멀어져간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내는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논 거울」 전문)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빨래를 해 널었다/바쁠 일이 없어 찔레꽃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텃밭 상추를 뜯어 노모가 싸준 된장에 싸 먹었다/구절초밭 풀을 매다가 오동나무 아래 들어 쉬었다/종연이양반이 염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가고 있었다/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또 하루」 전문)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시인은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자두나무 정류장’과 ‘이팝나무 우체국’이 있는 외딴 강마을에서 ‘그냥저냥’ ‘심심하게’ 살아간다. 삶의 기척에 귀 기울이며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둥글둥글 살아”(「나이」)가는 그의 시를 읽다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착해빠진 시인이 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안도현 시인의 말이 꼭 들어맞는다.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더없이 순정한 마음으로 “여전히 새로운 시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를 “시인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박준)

내 눈물이 아닌 다른 눈물이 내게 와서 머물다 갈 때가 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 울다 갈 때가 있어(「눈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