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36-37.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43~44. 저물녁, 지평선 너머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위로 붉은빛이 번지면 할머니는 스스로 하루 노고를 치하하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능숙한 폼으로 고개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했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아이스박스 캐리어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찬성이 물었다.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할머니는 대답 대신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 속을 장악해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양 약간의 죄책감과 즐거움을 갖고서였다.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87.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92.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이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97. 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 이수는 도화의 그런 몸을 사랑했다.

119. 더이상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150.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151. 빛에 관해서라면 하나 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모닥불 쬐듯 티브이 가까이 앉아 전자파를 쐬고 있는 모습이다.

153.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 아버지는 집에서 미리 준비해왔을 ‘대화에서 용건을 뺀 나머지 말’을 다 하고 난 뒤 난처해했다.

158. 해가 지면 벌판 위로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방 소도시는 서울보다 저녁이 빨리 찾아왔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면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더불어 이상한 흥분과 각성도 약기운마냥 맴돌았는데, 어느 땐 누가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길에서 맞는 어둠은 매번 낯설었다. 밖은 깜깜해 지금 내가 지나는 데가 어딘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럴 땐 내가 어딘가 무척 먼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원묘지와 화원, 진흙오리구이며 장어구이 따위를 파는 보양식당과 프로방스풍 모텔을 비껴갔다.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어둠 너머론 논과 밭이 지루하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서울 톨게이트 쯤 오면 꼬리를 길게 늘인 자동차 행렬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수많은 불빛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175. 아버지는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거다. 총기 흐려진 눈, 주관과 편견이 쌓인 입매, 경험에 의지하는 동시에 체험에 갇힌 인상을 보았을 거다.

181-183. 아버지를 만난 날, 그러니까 아버지가 내게 돈을 빌리러 집 앞까지 찾아온 날,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버지는 팔을 길게 뻗어 발신자 이름을 확인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사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오래전 우리를 떠난, 그것도 ‘여자’ 때문에 떠난 젊은 아버지가, 노안이란 걸 깨달아서였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발신 번호를 판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내가 휴대전화 화면에 뜬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아버지와 그 여자는 볼을 맞댄 채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뒤로 탁 트인 하늘과 사방이 울긋불긋하게 물든 겹겹의 산봉우리가 보였다. ‘둘이 정상에 올랐나보다……’ 조소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이 일었다. ‘등산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이국의 불빛이 보였다. 비행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다 휴대용 안대를 쓰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섯 시간 동안 일단 아무 생각도 안 할 작정이었다. 잠을 청하러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속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그것을 내려보았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7.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_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