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하인은, 육 할은 공포에, 남은 사 할은 호기심에 사로잡혀 한동안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있었다.

53. 그걸 보고 하인은 처음으로 명백하게 노파의 생사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그리고 그 의식은 지금까지 요란하게 타오르던 증오심을 어느 틈에 식혀 놓았다. 뒤에 남은 것은 그저, 어떤 일을 했는데 그것이 원만하게 성취되었을 때 느끼는 편안한 자신감과 만족감뿐이었다.

54. 우선은, 내가 지금 머리카락을 뽑던 여자 말인데 뱀을 네 치 길이로다가 토막을 쳐 말려 가지고는 말린 생선이랍시고 대궐 지키는 병졸들한테 팔러 다녔어. 역병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팔아먹고 돌아댕겼을 거여. 게다가 이 여자가 파는 마른 생선은 맛이 좋다며, 병졸들이 줄창 반찬거리로 사 대지 않았겠나.

54-55. 노파는 대강 이런 의미의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하인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칼자루를 왼손에 잡은 채 차갑게 가라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오른손으로는 뺨 위에 벌겋게 고름이 고인, 큼직한 여드름을 매만지며 들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하인의 마음속에 어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문 아래 서 있을 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문 위로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용기이기도 했다. 하인은 굶어 죽을지 도둑이 될지에 대한 고민만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때 이 남자의 마음이 어땠는가 하면, 굶어 죽는다는 선택지는 거의 떠오르지조차 않을 정도로 의식 저 너머에 밀려나 있었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민음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