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이렇게 비참한데 … 남의 행복이 싫었다.”(신정동, 묻지마 살인)

2. 생계와 평판에 위축되어 책임 회피와 전가를 일삼는 직장인

3. 경쟁률을 살피다 지원 시한을 넘겨 하소연하는 학부모

위 3가지 모두 “생존”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행복의 함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없다. 그것은 생존의 변형이기에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존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사야는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죽음이 불러올 불가피한 정치적, 경제적 불안이 두려웠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보았다(사 6:1). 하나님을 본 후, 이사야의 관심은 더 이상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에 집중되었다.”(Blackaby & Blackaby, 2008[200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