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 <공부도둑>, 생각의나무, 2008.

75.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내가 꼭 알고 싶었던 문제 하나는 이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생기는 이유는 태양과 지구가 조금 더 멀어지느냐 가까워지느냐(사실은 태양의 빛이 더 머리 위에서 비추느냐 더 비스듬히 비추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낮과 밤의 차이는 태양이 비치느냐 아예 비치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여름과 겨울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어째서 기온의 차이는 여름과 겨울 사이에 그렇게 큰 것에 비해 낮과 밤 사이에는 그리 크지 않은가? 이 질문을 던졌더니 이 선생님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주었다.

108. [중학교 2학년 때였는지 3학년 때였는지] 음성 장호원과 이천 장호원 사이에는 청미천이라는 작은 내가 있고, 그 내 위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나는 이따금 이천 장호원 쪽에 용건이 있어서 그 다리를 건너다녔는데 그 다리 난간 윗부분은 완만하게 각이 져 있었다. 거기에 햇빛이 비추자 해를 받는 방향과의 각도에 따라 그 밝기에 차이가 났다. 해를 비스듬히 받는 면은 좀 어둡고 정면으로 받는 면은 훨씬 밝았다. 그렇다면 그 밝기 차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곧 들었다. 마침 학교에서 배우던 삼각함수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면의 수직선과 태양 사이의 각을 θ라 하면 수식으로 비칠 때(θ=0)의 밝기를 A라 할 때 Acosθ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원리는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면 해가 미처 지지 않았는데도 어둑어둑해지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144. 나는 전 우주의 학문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학문의 정수들만 다 골라 훔쳐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물창고에 어떻게 진입하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창고에 따라 각각 모양이 다른 수많은 열쇠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열쇠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쉽다면야 누군들 들어가 보물을 가져가려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도둑질도 열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수 도둑은 한두 개 문만 여는 열쇠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마스터키’를 마련한다. 하나 가지고 모든 문을 다 따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의 창고에도 마스터키가 있을까? 마스터키는 없지만 마스터키에 아주 가까운 것은 있다. 그게 바로 물리학이다. 물리학을 가지고 물리학 아닌 방에 뛰어든 도둑은 얼마든지 보았지만 물리학 아닌 것을 가지고 물리학이라는 방에 뛰어든 도둑을 보았는가? 그러니 학문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는 물리학부터 해야 한다.

145~146. 사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가겠다고 정해놓기는 했으나 입시라는 관문을 과연 그렇게 쉽게 뚫을 수 있을까? 객관적 정황을 살펴보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우선 학생을 40명 모집한다는데 전국 수백 군데의 고등학교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것은 그렇다 치고, 내가 한 공부는 입시 자체만 놓고 보면 “저 친구 저러다가 대학 갈 수 있어?”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우선 공업고등학교였던 만큼 기계공학에 관련된 이른바 ‘전공과목’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모두 입시와 무관하고, 거기다가 교우지를 만든다 하여 편집일로 늘 부산하게 쫓아다니면서 시며 소설이며 논설에다 물리학 논문까지 쓴다고 박혀 있던 일이 시험준비에 도움이 될 리 없었다. 거기다가 뻔질나게 모임을 만들고 모임에 뛰어다녀야 하는 교회 학생회 활동까지. 사실 앞에서 언급은 안 했지만 입학 초기에는 야구부에도 드나들었고, 기계 실습공장 특별활동에도 참여했다. 야구부에서는 자질 부족으로 쫓겨나다시피 했으며, 실습공장 활동 또한 적성에 맞지 않아 오래하지는 못했지만 말하자면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먼 것들만 골라하고 다녔다. 설혹 입시에 관련 있는 과목이라 해도 청주공고의 학교 수업이 다른 명문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에 비해 월등할 리도 없는 일. 게다가 하루 2시간을 잔다, 3시간을 잔다 하는 식의 몸으로 때우는 공부방식은 처음부터 아예 나와는 인연이 멀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국내에서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시험에 감히 도전한다는 것인가? 오직 하나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내가 그동한 해온 나 나름의 독특한 공부방식이 이번에도 힘을 발휘해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시험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결코 시험준비를 철저히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시험과 무관하게 공부했기에 내 나름의 능력을 기를 수 있었고, 이렇게 길러진 능력이 시험에서도 그 효과를 발휘한 것뿐이다. 그렇더라도 시험에 앞서 준비를 안 할 수는 없는데, 이때 작은 노력만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이러한 학습방법은 ‘야생 경험’에서 나 혼자 터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지만 내가 받아들일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정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 기준에 따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관념의 틀 안에 확고한 위치를 부여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되면 이를 통해 사물을 ‘입체적으로’ 내려다보게 되어 있다. 이 안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적정한 방식으로 배치해 넣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문제가 나오든 척척 연결해서 풀어내게 되어 있다. 이것이 내 나름의 학습방식이고 시험 준비였다. 이것은 말하자면 ‘야생 경험’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159. 만일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물리학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와 연결해 개별과목에 대해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 잠정적 결론을 자기 언어로 서술하라. 그리고 학습이 진행되는 대로 이것에 대한 수정보완을 수행해 나가되 그 핵심은 반드시 유지하라. 이렇게 할 경우 설혹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핵심은 항상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학점관리를 해나갈 수 있다.”

193~195. 나는 처음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정말 물리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한번 깊이 되살펴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그저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을 내가 몇 시간 먼저 읽고 그 내용을 뇌까릴 참이었다. “이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입으로 강의할 때에는 교과서와 무관하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내뱉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곧 물리학 그 자체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은 물론 교과서에 없는 것을 가르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먼저 그 내용을 알고 마치 내가 교과서의 저자나 되는 양 그 내용을 내가 내 언어로 재구성하여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내가 주로 받아왔던 ‘교과서에 의존한 평면적 교육’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교육자 자리에 설 때 그와 반대되는 교육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의 전환은 교육을 위해서뿐 아니라 내 학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여기서 내가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은 물리학 전체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통합적 시각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서로 연관이 분명치 않은 단편적 이론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은 결국 내 이해의 공간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기억이 소실되면서 모두 날아가고 만다. 그러나 일단 통합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면 새로운 지식은 늘 이것과 연관되면서 토대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통합적 시각의 토대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수준 높은’ 책을 읽어서는 되지 않는다. 많은 곁가지를 걷어내어 굵은 줄거리만 명료하게 연결된, 그러면서도 되도록 평이하게 서술된 책을 구해야 한다. (중략) 전에도 더러 그렇게 느꼈지만 이번에 특히 책을 잘 선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당연히 책에는 좋은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현재 나에게 맞는 책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가 현재 알고 있는 수준에 맞추어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술한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간혹 내게 맞는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문하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책 냄새’를 잘 맡을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를 보면 남들이 좋다고 한 책, 특히 교수라든가 학자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는 책들은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이런 책들은 대개 내 수준에 비해 너무 어렵거나 생경해서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없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자기 수준에 비해 약간 낮은 책을 택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이미 아는 것이 80퍼센트는 섞여 있어야 읽을 수 있다. 뒤늦게 미국에 1년 동안 연수를 다녀오신 물리학과의 한 원로교수가 남긴 명언이 있다. 미국에 가서 강의를 들어보니 “아는 것은 알겠는데, 모르는 것은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것이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을 다시 음미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모르는 것을 보고 알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307.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관념에 따르면 시간변수 t와 공간변수 (x, y, z)는 서로 완전히 독립된 것이어서 시간을 1차원, 공간을 이와 독립된 3차원으로, 즉 (t) + (x, y, z)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것이 곧 (1차원+3차원) 구조로, 4차원 구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 우리가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사용해온 시간 공간의 구조이다.

308. 어느 한 변수가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면 그것에 해당하는 방향이 특별한 성격을 띠게 되어 4차원 구조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 이를 달리 이야기한다면 이 네 변수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 기준 축을 잡더라도 자연의 법칙은 동일한 형태를 취한다는 의미가 된다.

309. 특수상대성이론은 “자연의 모든 법칙은 시공간 변수 (w, x, y, z) (w≡kt) (k제곱 = -c제곱)를 활용한 4차원 형태(즉 변수 w, x, y, z가 대등한 자격으로 들어가는 형태)를 지닌다”는 말로 모두 표현된다. 나머지 모든 것은 이를 전제로 연역적으로 도출해내면 된다.

310~311. 둘째 가정은 “광속도는 어떤 관측자에게도 동일한 값을 취한다”였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가정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동쪽으로 광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본다고 하자. 내가 본 이것의 속도가 c라고 할 때 동쪽으로 이 속도의 90퍼센트, 곧 0.9c의 속도로 달리는 관측자가 이 물체를 보아도 여전히 그 속도는 c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곧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를 시속 9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관측하면 그 상대속도는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 될 텐데, 이것이 여전히 그 자동차에 대해 시속 100킬로미터로 간다고 하는 이상한 주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략) 결국 기존 개념과 차이는 오직 시간변수를 공간변수에 무관한 독립변수로 보았는지 혹은 공간변수와 합해 4차원을 구성하는 성분변수로 보았는지 하는 차이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316~317. 우리 상식은 시간과 거리는 각각 1차원 공간을 이루고 있을 뿐 합쳐서 2차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다시 말해 자신도 모르게 시간변수와 공간변수는 합해서 2차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적으로 1차원을 이룬다고 가정했던 셈인데, 이러한 가정이 우리 관념의 틀에서 기성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시간변수가 독립된 차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4차원의 한 성분을 이룬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관측 좌표축의 방향에 따라 이것이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들어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