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시인에게 움베르토 에코를 권한다. 강박이라니, 사기에 대한 불편을 _

이 시의 이미지들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철학자 들뢰즈의 표현처럼 “강기슭으로도 밀리지 않으면서 표면에 머물러”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는 쉬워야 하고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처럼 갖가지 이미지들이 연결되지 않는 모습으로 둥둥 떠 있는 것을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는 이러한 지배적 사고 구조는 말 그대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서사적 스토리를 완성시키려는 강박은 체제를 언제나 항구에 정박시키려는 자기 폭력에 다름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제 갓 등단한 젊은 시인의 시를 미숙함으로 밀쳐놓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인의 시들이 가진 이미지들은 규칙적으로 불규칙하여 미숙함으로 보기는 어렵다. 겨울 항구에서 자신이나 그 누군가에게 보내는 이 「안부」는 쓸쓸하고 고통스럽다. 시인이 시 머리에 옮겨 썼듯이, 들뢰즈는 『카프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지들은 땅 밑에 박힌 줄기의 세계, 그물, 거미줄이다. 편지들에겐 흡혈귀적 성격이 있다.” 시인은, 그 편지를 쓰는 박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