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 내 직원명부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니퍼스는 칙칙해뵈는 얼굴 양 옆에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 대체로 해적처럼 보이는 스물다섯 살가량의 청년이었다. 나는 그를 늘 야심과 소화불량이라는 두 가지 사악한 힘의 희생자로 여겼다. 그 야심은 자신이 고작 서류 베끼는 일을 하는 직원에 불과하다는 데 짜증을 내고, 법률서류 원본 작성이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업무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데서 드러났다. 소화불량은 가끔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거나 이를 꼭 물고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람에 필사하다가 실수를 할 때마다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데서 드러났다. 그는 필사하는 일에 한참 열을 내는 동안에도 불필요한 욕설을 나직하게 쉭쉭 뱉어내곤 했다. 자신이 일하는 책상의 높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런 버릇은 특히 더 심해졌다. 니퍼스는 대단히 정교한 물리적 변경을 꾀하곤 했지만 끝내 그 책상을 자기 마음에 들게 조정하지는 못했다. 책상 밑에 나무 도막이나 온갖 종류의 벽돌, 두꺼운 판지 조각 등을 끼워 넣은 뒤 마지막으로 압지를 접어 미세하게 조정을 해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등을 편하게 하려고 책상 뚜껑을 턱에 닿을 만큼 급경사가 지게 올려놓은 뒤 마치 네덜란드식 가파른 지붕을 책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처럼 거기에 서류를 놓고 글을 쓰다가는 팔에 피가 통하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그 다음에는 책상을 자기 허리띠 높이까지 낮춰 놓고 허리를 잔뜩 숙이고 글을 쓰더니만 등이 쑤신다고 투덜댔다. 요컨대 그 문제의 진실은 니퍼스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

17. 나는 그의 외투에 관해서 몇 차례 알아듣게 이야기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윤기 흐르는 얼굴과 근사한 외투를 동시에 선보일 능력을 갖추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니퍼스가 전에 한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터키는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붉은 잉크 값으로 썼다. 어느 겨울날 나는 터키에게 꽤 고상해 보이는 내 외투를 선물로 줬다. 속에 패드를 대서 푹신하고 아주 따듯하며 무릎에서 목까지 단추를 채우는 외투였다. 나는 터키가 내 호의에 감사해하면서 오후의 거칠고 무례한 행동을 좀 삼가려 들 것이라 기대했다. 한데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솜털처럼 포근하고 담요처럼 따듯한 외투를 걸치고 단추를 든든히 채우고 다니는 것이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말에게 귀리를 너무 많이 주면 좋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 거칠고 주인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을 일러 “귀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과 똑같이 터키도 그 외투의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그를 거만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복함이 해가 되는 사람이었다.

25. 사람이 전례가 없는 데다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방식의 위협을 받으면 자신이 지닌 너무나 자명한 확신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 경우가 바로 그랬다. 이를테면 자신의 확신이 제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모든 정의와 이치가 그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건과 무관한 제삼자들이 곁에 있을 때는 그들에게 의지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로 들게 마련이다.

37. 바틀비의 그 처연한 고독이 내 상상 속에서 자꾸 더 자라나는 것에 정비례해서 애초의 슬픔은 두려움으로, 연민은 혐오감으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나 그런 처지를 실제로 목격했을 때 어느 선까지는 선한 감정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설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요, 또 아주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63. 바틀비가 돌아서서 말했다.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먹으면 탈이 날 겁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당 반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벽과 마주보는 자세로 섰다.

_ 허먼 멜빌, “바틀비”, <세계문학 단편선17: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현대문학,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