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르크스의 인간소외에 대한 이론은 ‘인간’에 대한 나의 인식을 일보 전진시켜 주었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집필하고 있을 때 나는 마침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문예이론 선독>이란 과목의 강의 노트를 만들고 있었다. 이 강의 노트를 작성하기 위하여 마르크스, 레닌 저작을 다시 읽었으며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를 읽었다. 그것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반복하여 읽으면서 상세한 노트를 만들었다. 그때 ‘인간소외’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나의 머리에 들어왔으며 결코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계시와 정열은 <사람아 아, 사람아!>와 그 후기에서 충분히 밝혔다. 그 이후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을 분석하고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창작에 있어서의 자각적 추구로 되었던 것이다. … 이러한 나의 관점은 맹렬한 공격을 받았지만 그러한 공격이 나를 설득시키지는 못하였다. 나는 여기서 나의 비판자들에 대하여 ‘자기정신을 정시하기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7. <사람아 아, 사람아!>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격동이 인간과 인간 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 인간과 인간 관계는 이러한 격동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략) ‘혁명의 격정만을 이야기하고 혁명의 서정을 말하지 않는 것은 편향’이라는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지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129.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잘 읽어 보라구.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에 두 위인의 마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씌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의 이론, 그의 실천은 모두 이 ‘인간’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 인간을 ‘인간’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모든 현상과 그 원인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들 자칭 마르크스주의자 중에는 그 수단만을 기억하고 그 목적은 망각하거나 간과해 버리는 자도 있지. 마치 혁명의 목적이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가정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갖가지 울타리로 서로 격리시키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말이야.
237. 그때는 프롤레타리아의 감정이 있으면 대변의 냄새가 향기롭게 여겨진다는 말을 정말로 믿었었어. 나는 훈련과 사상 개조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지. 하지만 사실은 구토증이 나서 분뇨통에서 우글거리는 구더기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 어떤 아이가 ‘쑨위에, 구더기가 네 밥그릇으로 들어갔어.’ 하고 말했을 때는 본능적으로 뛰어 일어나 밥그릇을 내동댕이쳐 버렸지. 친구들이 와 하고 웃었을 때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어. 그리고 나서 나는 자신의 본능을 이겨 내자고 결심하고서 분뇨통 가장자리에 앉았지. 분뇨통을 응시하면서 손으로는 열심히 밥을 날랐어. 하지만 마음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무튼 한 그릇을 다 먹었고 나는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었어.
470. 20년 전 나는 상하이의 화둥(華東) 사범대학을 앞당겨 졸업하고 풍파 심하고 고난으로 가득 찬 문예계에 발길을 내딛었다. 돌이켜 보면 맹종과 무지가 힘이 되고 자신감을 부여해 주었던 시절이었다. 스스로는 이미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기본 원리를 통달하고 사회에 대해서나 인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연단에 서서 지도자의 의도에 따라 작성된 원고를 소리 높여 읽었고 나의 선생님이 주창했던 휴머니즘을 비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더 좋아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473. 나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모두 독파하지도 않았으며 하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읽은 한정된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에 대해서 말한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은 서로 통하거나 또는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경전적 저작 속에서 이론적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의 외침을 억제하려는 생각은 없다. 비판해야 한다면 비판하라. 이것은 어차피 나 자신의 사상, 감정이며 또한 스스로 추구한 자기표현일 따름이다. 허물은 나의 것이며 어떠한 벌을 받더라도 유감은 없다.
_ 다이허우잉, 신영복(역),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