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시인을 일러 ‘시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면 표현이 야단스럽다고 나무랄 분들이 있겠지만 그 시인이 이성복이라고 하면 과연 그렇다고 고개 끄덕일 분이 많을 것이다. 어딘가에 “좋은 시집은 나쁜 시집이다. 시를 쓰고 싶게 만들었다가, 결국 시를 포기하게 만든다”라고 적었다.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가 그야말로 그렇다. 이 시집에 사로잡혀 시인이 되어버리고 만 분들을 여럿 알고 있는데, 이 시집에 좌절하여 시인이 못 된 이들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10년을 기다려서 이성복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를 받아들게 되었다. 말은 쉬워졌고 뜻은 깊어졌다. 이 시집을 한마디로 줄이면 그냥 “생(生)이여”가 될 것이다. 감탄과 연민과 혐오가 뒤엉켜 있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그런 부름. 시인이 자주 동물과 식물에 기대어 말하는 것은 그런 생의 알몸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간혹 사람에 대해 말할 땐 소화기와 생식기를 언급한다. 헛된 꾸밈을 덜어내고 보면 인간 역시 입과 성기가 달려 있는 하나의 목숨일 뿐이라는 취지가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이런 취지가 이 시인 특유의 얼얼한 직유(直喩, simile)와 함께 읽는 이를 덮친다. 그는 비닐하우스가 “어떤 정신 나간 깨달음처럼 허옇게” 펼쳐져 있다고 말하고, 강이 “널어놓은 미래의 수의(壽衣)처럼” 흘러간다고 말하고, 땅은 “당장 걷어내야 할 내장처럼” 역하다고 말한다. 또 철이 안 든 자신을 “검은 비닐봉지와 싸우는 반쯤 눈이 가린 삽살개” 같다고 말하고, 문득 자신의 생이 “나를 키웠을지도 모를 새엄마처럼 낯설다”라고 말하고, 또 “노란 작은 오이꽃 속에 묻어 있는 진딧물처럼 내가 부끄러워졌다”라고 말한다.
내용에 대해서건 표현에 대해서건 길고 자세하게 말해야 마땅한 시집이지만 여기서는 도리가 없으니 시 두 편만 옮겨놓자.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 남들이 보면 부리 긴 새가 겁에 질린 무당벌레를 삼켰다 하리라 목 없는 무당개구리를 초록 물뱀이 삼켰다 하리라 하지만 나는 생쥐같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생에 대한 각서’ 전문)
“겨울에 죽은 목단 나무 가지에서 꽃을 꺾었다 끈적한 씨방이 갈라지고 터져나온 꽃, 죽은 딸을 흉내 내는 실성한 엄마처럼 꽃 떨어진 자리도 꽃을 닮았다 여름 꽃을 보지 못했어도 우리는 겨울 꽃이 될 수 있다 희부옇게 타다 만 배꼽 같은 꽃,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 다리 꽃, 철사로 동여매도 아프지는 않을 거다 그 꽃잎 마른 번데기처럼 딱딱하고, 눈비가 씻어간 고름 찾을 수 없다, 죽음이 불타버린 꽃”(‘죽음에 대한 각서’ 전문)
적어놓기는 했지만 덧붙일 말이 없다. 다른 시를 인용했으면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두 시를 열고 들어가야 이 시집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닥이 안 보이는 물속 같은 이 시들을 며칠 동안 읽었으나 나는 여전히 바닥에 닿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것은 이성복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향가의 깊이 같은 것마저 느껴지게 하는 그의 시를 나는 무슨 화두(話頭)처럼 받아든다.
_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마지막 글(한겨레21, 제9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