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940년 알제리 태생. 1981년 박사학위논문 <프롤레타리아트의 밤> 출간.

1. “단적으로 말하자면, 부르디외의 정식은 ‘미학의 바탕에는 정치가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지만, 반대로 랑시에르의 정식은 ‘정치의 바탕에는 미학이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최정우, 2010: 93~94).

2. “왜 ‘미학’이라는 개념이 지닌 ‘감성학’ 혹은 ‘감각학’으로서의 어원이 문제가 되는가? 여기서는 무엇보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Ästhetik이란 단어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먼저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칸트는 이 단어를 우리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 곧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형식을 해명하는 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랑시에르는 바로 이런 점에서 미학 개념에 관한 칸트의 선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해야겠는데, 무엇보다 랑시에르에게서 감성학/미학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의 조건이자 정치 그 자체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감각적인 것들이 분배되는 하나의 체계이며 또한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문제 삼는 불화의 영역이기도 하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바로 이런 감각적인 것이 지닌 경계적이고 위상학적인 심급의 문제, 곧 감각적인 것의 위계를 어떻게 분류하고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최정우, 2010: 91~92)

* 굳이 “미학”을 정치와 연계할 필요가 있을까? “숙의”(deliberative democracy)면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