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941년 일본 태생. ‘세속적 비평’의 중요성 강조.

1. “트랜스크리틱은 ‘이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시스템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해석 작업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다. 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시스템을 인지함으로써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 실은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시스템과의 관련 아래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시차)을 잊지 않을 때만 이동은 가능한 셈이다.”(조영일, 2010: 125)

2. “물건에 하우(呪力)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오늘날 우리가 화폐에 타인을 지배할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조영일, 2010: 138).

3. “프로이트에게 초자아란 전기에 등장한 검열관 같은 것이 아니라 외부로 향한 공격충동이 내부로 향해질 때 형성되는 것으로, 우리가 보통 문화(양심, 도덕)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가 선의가 아닌 악의(공격충동)에서 나왔다는 점과 그것이 항상 강제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가라타니는 프로이트의 이런 관점이 칸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본다(조영일, 2010: 155). 예컨대 칸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된 모든 자연적 소질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수단은 사회에서 이들 소질 사이에서 생기는 적대관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 적대관계가 결국 사회의 합법적 질서를 설정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대관계는 인간의 자연적 소질로서의 비사회적 사회성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려고 하는 심리적 경향성을 갖지만, 그러나 이 경향은 또 끊임없이 사회를 분열시킬 위험이 있는 저항과 곳곳에서 결부되고 있는 것이다.’(Kant, 이한구 옮김,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29쪽)

4. “가라타니의 세계공화국론은 쉽게 말해 평화론이다. 즉, 어떻게 하면 전쟁을 없앨 수 있을까로 수렴된다. 그런데 가라타니의 관점에서 그것을 국가를 지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국가는 결코 스스로 지양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소위 중간단체(중간세력)의 강화인데, 어소시에이션이란 사실 이런 중간단체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평화란 국가에 대한 중간단체들의 저항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것이야말로 혁명이고 사회주의인 셈이다. 사실 이제까지의 혁명이나 사회주의를 되돌아보면, 대부분 (전쟁에 의해) 국가가 파탄 난 상태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혁명은 거의 다 국가의 재건(강화)으로 변질됐는데, 이는 전쟁의 지양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다. 실제 그들은 군대를 부정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가라타니의 평화론은 곧 국가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라타니의 평화론은 곧 ‘어떻게 국가를 지양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 모두는 ‘국가라는 문제’(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발생과 국가 이전의 공동체에 대한 탐구)에 수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조영일, 2010: 160~161).

* 화폐, 교환, 평화는 모두 ‘국가의 지양’(세계공화국)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