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시절 요코하마와 오사카, 그리고 도쿄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가장 위에 있는 홋카이도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규슈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꽤 많은 크고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로 두루 여행도 다녔지요.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도쿄와 교토를 꼽겠습니다. 도쿄에 관해서는 지난 2016년 봄에 『임경선의 도쿄』라는 독립출판물(2,000부 한정판이었습니다)을 만들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도쿄의 곳곳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어서 이듬해 교토 편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문득 교토라는 도시는 도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 교토에 갔을 때는 저도 그저 다른 관광객들처럼 명소를 돌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보니 봐도 봐도 끝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지난 연초, 세 번째 교토 여행에서는 명소가 아닌 일상의 장소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특히나 개인들이 운영하는 교토의 가게들이 그랬는데, 가령 왜 어떤 가게들은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꼭꼭 숨어 있을까. 왜 서점 홈페이지의 ‘찾아오시는 길’ 안내문에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일까. 무슨 배짱으로 저 밥집 주인은 저토록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것인가. 왜 라이벌 가게의 홍보를 자기 가게에서 굳이 해주는 것일까. 이 카페는 일주일에 나흘만 열어도 괜찮은 것인가.

어딘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그것은 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고 그때부터 저의 ‘교토 덕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토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어서 그에 관한 다양한 문헌들을 찾아 읽어나갔습니다. 교토의 역사와 토양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습성, 일관되게 지켜온 가치관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 결코 변치 않을 어떤 의지와 마음가짐들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교토 고유의 정서들이 제게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교토와 교토 사람들은 자부심이 드높았지만 동시에 겸손했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했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만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기를 거부했고, 일견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인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깍쟁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켜나갔고,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향한 예의를 중시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로 만들어갔고, 끝없는 욕망보다는 절제하는 자기 만족을,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제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깝습니다.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토에 대해서라면, 이 도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관되게 품어온 매혹적인 정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것과 오늘의 것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교토의 한 계절을 걸었고 그 시간 속에서 교토 고유의 정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이곳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_ 임경선, “교토의 정서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예담, 2017,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