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여행 중에 사람이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1938년에 완성한 <Compartment C Car>라는 작품에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홀로 여행하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혼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내면에 숨겨놓은 것만 같다.

32.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실린 판화 일러스트로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오하시 아유미는 1960년대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생활 에세이를 수십 권 펴낸 작가이자 계간지 <아르네Arne>의 편집인, 그리고 도쿄와 교토에 거점을 둔 ‘이오 숍’과 ‘이오 플러스’의 디자이너 겸 주인이다.

34. “아아, 그렇죠. 저희 가게 간판이 잘 안 보이지요. 제대로 된 간판을 달아야지, 달아야지 하면서 여태 2년째 못 달았네요.” (중략) 내가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오하시 아유미의 오랜 팬으로 <아르네> 전권 모았으며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게 매니저는 경계심이 풀어졌나 보다. 내가 고른 물건의 값을 계산하면서 조금 뜸을 들이더니 이내 신중한 표정으로 숨겨둔 진실을 알려주었다. “실은… 저희는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간판을 달지 않았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찾기 어렵도록요. 숨은 집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가게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는 사전에 알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둘러보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신경쓰거든요. 지나다 불쑥 들른 분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면 마음먹고 여기로 걸음하신 손님들이 가게를 둘러보실 때 긴장하게 되니까요.”

47. 교토의 노포에선 무조건 손님을 ‘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을 대등하게 여긴다는 건 그만큼 자기가 만들고 파는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노포의 현관문을 열거나 노렌(천 장막)을 걷고 들어갈 때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52~53.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錦市場에는 1560년에 창업한 칼 전문점 ‘아리쓰구’가 있다. 요리용 각종 칼을 비롯, 냄비, 도마 등의 도구들도 판다. 교토의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음식 맛을 전수하면서 아리쓰구의 요리 도구들도 대물림한다. ‘도구라는 것은 소중히 다루면 언제까지라도 생명을 가진다’고 강조하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건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을 전하는 아리쓰구. ‘수리할 수 있는 물건만을 만드는 것이 장인’이라며 수십 년 전에 만든 상품이라도 완벽하게 수리해내는 솜씨를 발휘한다. “새것이 좋다거나 오래된 것이 좋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겁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항상 더 좋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아리쓰구의 주인이자 칼 장인은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하지 않은 좋은 점들은 그대로 유지하되 항상 어딘가 조금씩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자세. 이것이 교토의 노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70~72. 1982년에 문을 연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시작은 30평 정도의 작은 책방이었다. 당시에는 따로 점장도 없이 아르바이트 점원들(주로 대학생이나 예술계 프리랜서들이었다)이 각자 특기나 관심 분야(영미 문학이나 만화, 음악, 디자인 등)를 살려서 서가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매출보다 흥미로운 서가를 만드는 일을 더 중시해서 점원들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팔게 한 것이다. 점원들의 개성적인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서점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나갔다. (중략) 서점 홈페이지의 ‘찾아오는 길’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희 서점을 찾아오다가 만약 길을 헤매시면, 인근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시는 것은 민폐가 되오니 아무쪼록 삼가주십시오. 반드시 서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 길을 물어봐주시길 바랍니다.”

95~97. 교토에는 경관조례법이 있어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의 글자 색상은 흰색, 검정색, 갈색 외에는 접수가 되지 않고 특히 선정적인 느낌의 빨간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또한 교토의 특정 거리는 건물 높이도 20미터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리 높아도 대략 5층 건물을 넘어설 수는 없다. 기온祇園, 가미시치겐上七軒 등의 유명 화류가에는 전봇대나 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140~141. 교토 시내 한가운데 거리에 위치한 다와라야 료칸의 객실은 고작 열여덟 개다. 하지만 객실 하나하나에 일본 고유의 문화가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 자연과 빛, 예술, 온화함과 정숙함이 어우러져 있고 객실에서는 유리 창문을 통해 청초한 일본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와라야 료칸에 투숙해본 경험에 대해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는 에세이 『도쿄와 교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다와라야 료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매우 독특하고 밀도 높은 공기에 휩싸인다. 외부 세계와는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장소. 어딘지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붕 뜬 느낌. 오늘도 내일도 이곳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가 않다. 마치 작은 우주에 혼자 떠 있는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의 고독은 차라리 해방감에 가깝다.” 분명 나머지 열일곱 개의 객실도 손님들로 꽉 차 있을 텐데 그들의 모습은커녕 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일을 하러 들락날락하는 종업원의 인기척조차 느낄 수가 없다. 이 고요함은 실은 다와라야 료칸 측의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있다. 객실 배치나 복도의 동선, 가구 배치나 조명 상태 등, 양질의 고독감은 가장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세심하게 계산되어 연출된다.

173.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교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게 간판이나 노렌에 교토를 상징하는 ‘京’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자기 본연의 실력 대신 ‘교토’라는 상징적인 브랜드에 의지하는 ‘가짜’로 간주한다. ‘교토 요리’라고 간판에 굳이 써 붙이는 식당도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요리 솜씨에 자신 없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229~230. 예를 갖추어 장황하게 인사를 마치고 나니 어쩐지 괜히 수줍어져서 우리는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대로변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분주히 옮기기 시작했다. 한참을 앞만 보고 걷는데 누가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은 기운이 등 뒤로 느껴졌다. 몸을 휙 돌려 보니 치요 아주머니가 료칸으로 다시 들어가지도 않고, 아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서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황송하다는 듯이 연거푸 머리 숙여 우리를 향해 절을 했다. 우리는 놀랍고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뭐라도 된 양 계면쩍기도 하여, 절 대신 서양식으로 캐주얼하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우리가 그러는 걸 본 치요 아주머니는 이번에는 앳된 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팔을 번쩍 들어 함께 손을 흔들었다. 몸을 다시 앞으로 돌려 걸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곧 큰길이 나올 터였다. 마침내 골목길 모퉁이를 끼고 왼쪽으로 꺾어 큰길로 빠지려던 찰나, 에이 설마 하며 한 번 더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치요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상체를 90도로 완전히 숙인 상태로 이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아까부터 저러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내심 죄송했다. 자신이 접대한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고 또 한다는 ‘교토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이야기는 진짜였다.

_ 임경선,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예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