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는 다른 누벨바그 감독에 비해 훨씬 뒤늦게 알려졌지만 ‘최후의 누벨바그’라는 말을 들을 만큼 가장 지속적으로 누벨바그 영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60년에 발표한 그의 첫 장편영화 <사자의 신호>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로메르는 동료들이 영화감독으로 전업해 활동하고 있는 동안에 <카이에 뒤 시네마>를 지키면서 편집장을 역임했고 서서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메르의 야심은 18세기 철학자 파스칼, 라브와이예르, 라 로슈푸코 등과 같은 ‘도덕주의자’(Moraliste)의 실천을 영화로 옮기려는 것이다. 프랑스말로 도덕주의자는 도덕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뜻과는 다르다. ‘도덕주의자’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연 로메르의 영화는 “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도중 뭘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행동이 아닌 생각을 담은 영화 말이다”라고 말한 언명을 증명하는 바가 있다. 로메르는 식탁에서 등장인물이 파스칼의 철학을 읊는 따위의 사소한 대화장면에서도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어내는 놀라운 영화기법과 정신의 소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