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73. 방송 진행자는 이렇게 물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하와를 버렸다면, 인류는 낙원에서 아담과 함께 영원히 살았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있는 질문이다. 질문을 그대로 받으면 질문자가 정해 놓은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함정 질문이랄까. 아내와 같이 죽거나, 혼자서 살겠다고 아내를 버리거나 양자택일밖에 없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C. S. 루이스는 같은 질문을 좀 더 열린 방식으로 물어본다. “아담이 ‘나쁜 일을 따라 하는’ 대신 하와를 나무라거나 꾸짖고 그녀를 위해 하나님께 탄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밀턴은 말해주지 않는다. 몰랐을 테니까. 루이스는 아마도 하나님께 다른 카드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이제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거부된 선은 볼 수 없다.” 주어진 명령을 따라 봐야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있는데, 아담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가능성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모세 이야기를 꺼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엄청난 죄를 지어 하나님이 격노하신 나머지 그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모세는 먼저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엄하게 꾸짖은 후, 그들을 벌하시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막고 섰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그런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 모세의 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이 해야 할 일이었다. 아내의 죄를 따라 하는 방식으로 같이 죽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인류의 대표로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었어야 하는 것이다.
_ 홍종락, <오리지널 에필로그>, 홍성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