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나는 장례식에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중략)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산문 「박인환」,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