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진화생물학자 롭 브룩스는 “모성은 ‘사실의 문제’이나 부성은 ‘견해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30. 일부일처제는 남자를 위한 복지제도다.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면 짝을 구하지 못할 남자가 얼마나 많을지는 잠깐만 생각해 보면 깨닫는다. 일부일처제는 인간이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면서 강화된 제도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역사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선호했다. 왕들이 그랬고, 오늘날 일부 이슬람 국가는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허용한다.

30~31. 매트 리들리는 “인간은 간통으로 얼룩진 일부일처제에 어울리도록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남자의 고환 크기와 남녀 간 몸집 크기 차이다. 인간, 침팬지, 고릴라를 비교해 보자. 고릴라는 세 유인원 중 몸집이 가장 크지만 고환은 가장 작다. 고릴라는 알파 수컷이 하렘을 지배한다. 암컷은 바람을 거의 피우지 않는다. 암컷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가임기를 가지며, 때문에 수컷은 섹스를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수컷이 고환에서 정자를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다. 침팬지는 난교 시스템이다. 섹스가 빈번해 정자 소비량이 많다. 때문에 고환 크기가 고릴라난 인간보다 크다. 인간 남자는 침팬지보다는 작고 고릴라보다는 크다. 인간의 짝짓기 시스템이 고릴라와 같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증거라고 이야기된다. 이는 또 바람피우기라는 일탈을 설명하는 단서다.

39~40. 인간의 경우 남자 미토콘드리아는 정자 꼬리에 들어있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수정이 일어날 때 난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핵의 유전자만 전달하고,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전달하지 못한다. 이는 여자가 남자와의 ‘게놈 내 분쟁’에서 승리한 결과라고 한다. 여자는 핵과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모두 전하지만 남자는 핵의 유전자를 공급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내 몸 세포에 들어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에게서 왔다. 아버지의 미토콘드리아는 내 몸에 없다. 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그 외할머니의 어머니라는 모계를 따라 전달되어 왔다. …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따라가면 그것을 오래전에 전해준 최초의 여성이 나온다. 그 이름은 ‘미토콘드리아 이브’다.

57~58. 자기기만은 어떻게 작동할까? 트리버스에 따르면, 진짜 정보는 무의식에, 가짜 정보는 의식에 저장된다. 진짜 정보는 무의식에 들어있어 내가 출력할 수 없다. … ‘무의식’에 진짜 정보가 담겨 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무의식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까? 피부 반응 검사를 해보면 된다. 피부 반응 검사는 거짓말탐사기 원리 중 하나다.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알아내는 실험을 해보면, 의식은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하지만 무의식은 그것이 자기 목소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자기기만의 정보 처리는 이런 식이다. 불리한 정보는 외면하고, 유리한 정보를 찾으며, 나에게 편향되게 정보를 해석한다. 또 긍정적인 정보를 쉽게 기억한다. 부정적인 정보는 잊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중립적 혹은 긍정적인 것으로 바꾼다. “기억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방식으로 계속 왜곡된다.”

60~61. 권력 감정이 사람의 어디를 어떻게 변하게 하는가 하는 증거는 뇌 속에서 찾았다. 피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출량이 달랐다. 권력자 자세 그룹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졌고, 종속자 자세 그룹은 수치가 낮아졌다.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세를 바로 하라’고 말한다. 어른 앞에서 다소곳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심리학자가 조사해 보니 어른들의 이 오래된 말에는 신경학적 근거가 있었다. 어른들은 뇌 속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을 염두에 두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뇌 속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졌다. 테스토스테론은 전형적인 남성 호르몬이다. 승리를 경험하면 늘어나고, 쓰디쓴 패배를 당했을 때 줄어든다.

82. 침팬지는 권력으로 성 문제를 해결하고, 보노보는 성으로 권력 문제를 해결한다.

108. 예정된 세포 죽음을 아포토시스apoptosis라고 한다. 의견이 다른 세포, 필요 없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가 자살 버튼을 누른다. 사람 몸속의 세포 중에서 매일 100억 개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진다. 이 세포는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아 죽는 게 아니라, 아포토시스에 의해 소리 없이 제거된다.

173. 생리학 교과서에 따르면 인간 감각계는 초당 1,100만 비트의 정보를 뇌로 보낸다. 무의식이 거의 다 처리한다. 의식이 처리하는 정보량은 이중 불과 16~50비트다. 정신활동의 대부분은 무의식이 장악하고 있다.

174~175. 믈로디노프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견해를 형성하려는 투쟁에서 열렬한 자기 옹호자가 진실 추구자를 이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니 물리적 세계와 나의 뇌가 파악한 세계는 다르다. 뇌가 세상을 때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하기 때문이다. 믈로디노프는 “현대 신경과학에 따르면 모든 인식이 어떤 면에서는 망상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떠올렸다. 칸트가 이 책에서 해낸 일은 ‘물리적 세계’와 ‘뇌가 파악한 세계’의 차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이다. <순수이성비판>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한때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고 불렸으나 이 책이 나왔을 시점에는 “내쫓기고 버림받은 늙은 여인”이 되었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이자 회의주의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흄이 그 얼마 전 ‘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감각이 파악한 세계’가 ‘물리적 세계’라는 실재와 다른 데 그걸 갖고, 진리를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느냐며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내놓은 제안은 실재라는 ‘물리적 세계’에 매일 게 아니며 ‘뇌가 파악한 세계’를 철학의 연구 대상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칸트는 사람은 선험적으로 양, 질, 관계, 양태라는 네 개의 범주 구분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뇌가 파악한 세계’를 분류한다고 말했다. 칸트의 궁리 이후 철학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179. 의식 문제의 다른 이름은 몸-마음의 문제다. 몸-마음 문제는 오랜 탐구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라는 생체 기계와, 심상이라는 주관적인 느낌 사이를 어떻게 보고 연결시키느냐 하는 작업입었다. 코흐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떻게 뇌가 생체전기적인 활동을 주관적인 상태로 변환하는지, 어떻게 물에 반사된 광자가 마법처럼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옥색 호수라는 지각으로 변형되는지는 수수께끼다. 신경계와 의식 간 관계는 본질을 규정하기 힘들고, 뜨겁고도 끝없는 토론 주제다.”

183~184. 코흐는 “인터넷은 이미 지각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라는 깜짝 놀랄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의식이 갑자기 생겨난 단순한 요소가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인 특징임을 상정하면, 통합정보이론은 정교한 형태의 범신론이”라면서 “만물이 어느 정도 지각을 갖고 있다는 가설은 그 우아함과 논리적 일관성 때문에 대단한 호소력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현상>의 저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을 새로운 스승으로 떠받는다. 예수회 신부이자 철학자, 고생물학자였던 이 프랑스인은 “복잡성은 의식을 낳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코흐는 지구촌을 빽빽하게 연결한 거대 네크워크인 “인터넷의 수호성인이 있다면 바로 샤르댕일 것”이라고 말한다.

194~195. 작가 김영하는 말한다.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약을 식후 30분에 드세요 하는 게 미래 기억이다.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게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217.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네 가지 기본적인 힘, 즉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이 있다고 말한다. ‘전자기력’은 전기와 자기의 힘을 가리키고, ‘강력’은 양성자 속에 들어있는 세 개의 쿼크를 서로 묶어두는 힘이다. ‘약력’은 중성자를 양성자로,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꾸는 힘이다. 약력은 주로 핵분열 때 나타난다. ‘중력’은 질령이 있는 물체끼리 끌어당기는 힘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네 가지 힘이 우주 초기에는 모두 같은 하나의 힘이었고, 초기 우주가 식으면서 이 네 가지 힘이 하나씩 생겼다고 본다.